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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31. 2022

성공이 아니라 안전한 실패들을 지향해야 한다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요즘 들어 하나 믿고 있는 건,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안전한 실패들'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공은 너무 거창하고, 너무 멀리 있는 무엇에 가깝다. 그보다는 계속하여 안전한 실패들을 늘려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무더기 쌓인 실패의 더미 속에서 약간의 보상처럼 싹이 하나씩 피어난다. 그 싹이 생명수가 되고, 삶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글을 10편 쓰면, 좋은 글 1편쯤은 남게 된다. 100편 쓰면 10편이, 1000편 쓰면 100편 정도가 남는다. 그러면 책 한권이 된다. 그 중 하나는 작은 공모전에서 에세이상이라도 받을지 모른다. 또 몇 편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나의 오랜 친우나 독자가 되어줄 수도 있다. 실패들의 더미 속에서 피어난, 초록빛의 새싹들을 그렇게 얻는다. 이런 실패들은 안전하다. 10편 중 9편의 글이 형편 없다고 해서, 누가 칼 들고 쫓아올 일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거창한 일'도 사실 그렇게 일어나는 듯하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도 몇 편의 고전 작품을 남겼지만, 사실상 빛을 보지 못한 수백 곡을 작곡했거나, 수천점의 그림을 그렸다. 에디슨은 1000개 이상의 특허를 냈지만, 그 중에서 정말 주목받았던 발명품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유명 가수의 노래들 중에서도 널리 인기를 얻는 건 수백곡 중 몇 곡에 불과하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성공을 지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르면 몰라도, 그저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했을 따름일 것이다. 

삶의 사소할 수 있는 일상들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거창한 행복을 꿈꾸면 당장 오늘이나 이번 주말의 행복을 놓친다. 대신, 약간 대책없이 교외로도 나서보고, 새로운 공연도 보고, 새로운 거리에도 불쑥 들어서다 보면, 새로운 행복을 찾고 삶의 생기를 얻는 일들이 일어난다. 새로운 동네가 별로일 수 있고, 교외 나들이가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야말로 안전한 실패들이다. 그런 실패가 그렇게 절망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험생활도 '합격'이라는 거대한 목표만 좇다 보면, 마음이 성급해지고 차근차근 지식을 단계적으로 습득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조급함 때문에 하루종일 빠른 배속으로 강의만 듣게 된다. 그보다는 하나씩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스로 테스트해보고, 모르는 것들을 확인하고 쌓아갈 필요가 있다. 몇 가지 공부 방법들을 실험해보면서, 어떤 방법들이 내게 맞지 않은지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나만의 방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관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을 어느 정도 두루 만나보는 일은 내 안의 선입관과 편견을 녹아내리게 한다. 그러나 관계의 성공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그만큼 실망도 크고 상처도 깊어진다. 그보다는, 그저 여러 관계들 속에서 나에게 맞는 관계만이 남는다는 조금 가벼운 믿음을 가져보는 게 좋다.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듯, 내 관계의 실패들이 결국에는 사금 조각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믿어보는 편이, 역시 맞지 않나 싶다. 

핵심은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실패여야 한다는 점이다. 안전하지 않은 실패는 삶에 너무 큰 타격과 피해를 준다. 그것은 아예 우리 삶을 뼛속부터 부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안전한 성공들만을 누리면, 한 번의 실패에 너무 취약할 수 있다. 온실 안 화초는 어쩌다 든 찬 바람에 금방 시들어 버릴 것이다. 관건은 안전한 실패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실패들을 자꾸 삶에 쌓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삶은 좋은 삶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은 묘한 믿음이 내 안에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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