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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29. 2022

나는 서른이 될 때까지 책을 쓴 걸 비밀로 했다

Photo by SIMON LEE on Unsplash


나는 서른이 될 때까지 책을 쓴 걸 비밀로 했다. 주위 사람들도 아주 친한 일부를 제외하곤 몰랐다. 대외적으로도 본명이 아닌 필명을 썼고, 나이도 밝히지 않았으며, 강연이나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대학원을 다닐 때나 로스쿨을 다닐 때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그랬던 것은, 나만의 삶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나만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타인의 간섭이나 시선을 벗어나 자유롭게 말하는 것,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온전히 이야기하는 것, 내가 온갖 편견이나 선입관으로 규정당하지 않고 온전히 세상 안에 서는 것, 같은 것이다. 나는 대외적으로 무엇보다 20대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20대가 쓴 인문학 책이라니, 우리 나라 분위기에서 그런 책이란 치기어리고 미숙한 책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보편적일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정작 내가 쓴 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20대에 쓴 '분노사회'이다). 

주위의 시선이랄 것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이 안 팔리면 안 팔리는대로 헛수고 한다고 볼 시선이 신경쓰였다. 잘 된다고 해봐야 또 누가 그리 '책'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다. 당시 나는 책이나 문학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만의 삶을 이어나가고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그냥 홀로 단단해지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어린 작가'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든, 취업이나 논문 준비 안하고 '글쓰기' 같은 것이나 한다고 폄하할 주변 시선이든, 그런 것들을 내게서 '닫아둘'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꽤나 명확히 밝히며 사는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이제 타인의 영향 보다 내 안에 자리잡은 나 자신의 힘이 더 강해진 걸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럴 때까지 최소한 5년쯤은 걸렸고, 길게 보면 10년은 걸렸다. 그 시간은 말하자면, 내공을 쌓으며 버티고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내게는 이 세상에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그런 엎드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로스쿨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내가 법 공부를 한다고 주위에 거의 떠벌리지 않았다. 그냥 기다리고 버텨내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자기 일'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자기 일'로 자리잡기 전에 타인들이 지나치게 간섭하고 시선을 보내고 참견하기 시작하면, '자기 일'이 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내가 삶에서 무언가를 쌓아가는 방식은 그랬다. 나비로 세상을 날아다니기 전에는, 반드시 번데기의 시절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빙산 같은 삶을 살 것이다. 가능하면, 수면 아래 빙산 같은 것을 계속 지니고서, 그런 마음의 힘과 중심을 지켜내며, 내가 원하는 삶을 매일 준비하는 삶을 살 것이다. 타인들의 간섭이나 참견 같은 것들이 내게 미칠 수 있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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