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저녁 약속을 마치고,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비오는 밤답게 길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고, 혼자 반짝거리는 길을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가로등 아래 커다란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리며 비를 맞고 서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고는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그저 그 순간, 저 거미줄 한 가운데 버티고 선 거미의 입장이라는 게 꼭 인생과 같기도 했다. 그렇게 삶이란 버티고 견디는 일이지, 싶은 생각도 들고, 저 가느다란 거미줄이 태풍을 견뎌내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인간이 삶을 견디는 일이란, 무뚝뚝한 벽돌담처럼 버티고 서있는 일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때론 흐름을 타듯이, 물살에 흔들리듯이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쪽에 가깝지 않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더 유독 그 순간에 머물렀던 이유는, 이러한 순간을 만나는 것 자체가 삶처럼 느껴져서였다. 평소같은 시간에 퇴근하여, 인파를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면, 아마 나는 저 거미줄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봤다 하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별 감흥 없이 지나쳤을 뿐, 멈출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간 늦은 밤, 비가 와서, 저 거미줄에 맺힌 알갱이들이 빛나고, 사람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어서,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었다.
대개 삶에서 어떤 길에 들어서는 일이란 다른 길을 버린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 어떤 길에 들어선다는 건, 다른 길들을 버린다는 것보다는 사실 그 길에 준비된 수많은 만남과 우연 속으로 걸어가는 일에 가깝다. 선택은 가능성의 종말이 아니라 또다른 가능성들의 시작이다. 삶에서의 선택은 나무에 열린 여러 열매들 중 하나를 따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해변 중 하나를 골라 그 해변만의 무수한 모래알과 돌멩이와 바다 생물들을 만나는 일이다.
오늘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간 날이다. 이런 날, 나는 집에 일찍 돌아와 영화 한편을 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소소한 저녁을 보내었고, 마침 비내리는 밤이었고, 그래서 수백번 지나간 이 길에서 만나지 못했던 빛나는 거미줄을 만났다. 만약,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기를 택했다면, 그 영화 안의 수많은 디테일들을 만나 또다른 감동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쪽이든, 선택에는 디테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다른 가능성을 버린다는 관점보다 훨씬 중요한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