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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02. 2022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아는 방법


Photo by Lina Trochez on Unsplash


요즘 나는 삶에서 어떤 일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지리멸렬할 정도로 끈질기게 이어가며, 다름 아닌 시간을 투여해야한다는 걸 느낀다. 시간을 쓰지 않고는, 무엇이 내게 어울리거나 가치있는지, 의미있는지 알기 어렵다. 요즘에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이지만, 정작 선택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내게 가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시대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떠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그래서 어디에든 깊이 소속되지 않는 것, 무언가를 완전히 선택하기 보다는 한 발은 빼놓는 것, 완전히 투신하거나 헌신하기 보다는 계속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관점이 통념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런 방식은 분명 '덜 위험'하고 '안전'한 방식이긴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일의 진짜 가치를 알기는 어렵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크게 세 가지에 나를 던져 넣었다. 첫번째는 글쓰기였다. 그 시절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작가가 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수천권의 책을 읽고, 수천페이지의 글을 썼는데, 그로부터 10년도 더 넘게 흐른 이제서야 '글쓰기'의 가치랄 것을 스스로 조금은 알게 되어간다고 느낀다. 내가 '글쓰기책'을 낸 건 첫 책을 낸 이후 10년 뒤였는데, 그쯤 되어서야 글쓰기가 내 삶에서 하는 진짜 역할이랄 것에 조금은 확신이랄 것을 갖게 된 셈이다. 


두번째는 가정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가 가장 극적으로 느낀 건 이제 '선택의 종말'이었다. 더 이상 내가 만나는 모든 이성들이 '가능성'이 아니라는 것, 달리 말하면, 그 전까지 스쳤던 이성들에게는 작은 가능성이나마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 자체를 삭제시키면서, 나는 헌신하기 시작했다. 조율하고, 타협하고, 나를 바꾸고, 그러면서 진짜 관계란 무엇인지 알아갔던 것 같다. 관계의 가치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세번째는 로스쿨이었다. 그전에는 일반대학원을 가긴 했지만, 온전히 나 자신을 그 속에 투신하진 못했고, 그래서 그냥 그만둔 채 나와버렸다. 그래서 그 일의 가치를 모른다. 그러나 로스쿨에는, 법학 공부에는 적어도 몇 년간 투신이랄 것을 했다. 그리고 이건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조금 더 투신하고, 더 이어가고, 더 헌신하여야 내가 더 이 일도, 세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처음 로스쿨을 입학한 때로부터 10년쯤 지나서는, '변호사로 산다는 것'에 관해 책이라도 한 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이 일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투신하거나 헌신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냥 모든 게 아주 단순하게만 보인다. 일이란 다 그냥 돈벌이 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글쓰기도 자기 명성을 위해서 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결혼도 그냥 자유를 포기한 바보 같은 일이나, 육아도 자처하는 고생 이상으로 안 보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엔 모른다. '밖'에서 보는 시선은 진실의 100분의 1에도 닿지 못한다. 


가치를 알려면, 오랫동안 끈질기게 그것을 경험해봐야 한다. 온 몸으로, 피땀 흘리는 듯한 어려움과 크고 작은 기쁨들과 시간과 시간이 엮이는 끊임없는 춤을 경험해 봐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야 조금씩 알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선택지들이 그냥 열린 문으로만 내 앞에 있는 상태에서는, 그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삶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무엇이든 선택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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