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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06. 2022

인생의 원리 또는 비밀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요즘 나는 인생의 묘한 진실 혹은 비밀 하나를 알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진실이란, 인생은 결핍과 고갈의 원리가 아니라, 생성과 넘쳐남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생은 자기가 가진 결핍들을 채워나가는 여정이라 느끼기 쉽다. 혹은 자기의 무언가를 소모하고 고갈시키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령,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소재의 고갈'이다. 자신이 가진 소중한 소재들을 너무 쉽게 다 써버리면, 나중에 쓸 것이 남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런 경우는 무척 많이 보았는데, 그 사고구조가 '쓰면 사라진다'라는 고갈의 원리를 전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글쓰기는 그와 정반대에 가깝다. 나의 가장 소중한 소재를 다써버릴수록, 소재는 늘어나고, 감당할 수 없을정도로 범람하고 폭발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소재는 계속 되돌아온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재가 어느 시절의 여행이나 사랑이라고 해보자. 그 여행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면, 그대로 그 소재가 '고갈'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소재는 조만간 미래에 다시 또 다른 관점에서 소환된다. 다른 측면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어진다. 그 소재에서 예전에 기억나지 않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다른 디테일들이 떠오른다. 한 번 쓰고 나면 고갈되는 게 아니라 물꼬가 트인다. 온갖 틈새로 그것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계속 사랑하면 곧 질리고 고갈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랑을 하지 않게 되는 건,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더 풍요로워진다. 매일이 새로운 디테일이고 새로운 이야기이며 새로운 사건의 넘쳐남이 된다. 사랑이 끝나는 건 사랑을 너무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저 어느 순간부터 사랑하길 관두었기 때문이다. 매일 사랑하면, 매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습관이 된 사랑은 내일도 솟구친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면, 권태에 빠지고 다른 일을 하고 싶게 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일이 그 일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기계적인 반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로 어떤 일을 매일 한다면, 그 일은 계속하여 새로운 영역들을 불러온다. 그 일이 얼키고설킨 수많은 경험들을 불러오고, 그 이전에는 몰랐던 디테일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확장시켜 준다. 어떤 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고갈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일 자체로부터 계속 피어 오른다. 

음악은 매일 듣는 사람만이 계속 듣는다. 그런 사람만이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책은 매일 읽는 사람만이 계속 읽는다. 그런 사람만이 여러 영토를 여행하듯, 다양한 책들의 세계를 탐독한다. 운동은 매일 하는 사람만이 계속한다. 그런 사람만이 온 몸의 근육들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근육들을 키워나가며, 몸의 구석구석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든다. 그 어느 것도 고갈의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삶은 계속하여 넘쳐 흐르는 무엇이다. 

그러니까 삶은 중단할 때까지 계속된다. 중단하는 순간, 삶은 밑빠진 독의 물처럼 순식간에 고갈되고 사라진다. 그러나 중단하지 않는 한, 삶은 밑빠진 독이 아니라 샘물이 된다. 구멍을 채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넘쳐 흐른다. 그 넘쳐 흐르는 삶이 강이 되고, 그 강 위에 돛단배를 타고 흘러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 된다. 그것이 내가 매번 조금씩 느끼고 있는 삶의 진실이다. 내가 엿보고 있다고 느끼는 삶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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