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불안, 결혼의 슬픔

by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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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내게 마냥 행복한 일이었다기 보다는 슬프거나 불안한 일에 가까웠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관계란 영속적인 관계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싶었던 마음에는, 그 연애의 슬픔이라는 게 지긋지긋해서이기도 했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간다면, 불안하게 사랑하지 않고, 안정된 사랑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이 안정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슬픔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이제 슬픔은 조금 더 거대한 문제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젠가 떠나보내거나, 언제까지 함께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 대신, 오히려 더 확실한 슬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별을 없앤다는 건 불가능하고,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결혼은 진정한 이별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작은 가정을 꾸리고, 하루하루를 쌓아가지만, 사실 이 인생 자체가 유한하다. 오늘, 차를 타고 가며 아이는 죽으면 어떻게 돼? 라고 물었는데, 아내는 하늘 나라에서 다 같이 만나서 또 놀거야, 하고 답했다. 나는 정말 하늘에서는 모두가 만날까, 하고 물었다. 아내는 모르니까 그렇게 믿자, 하고 말했다. 어차피 모르니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의 아주 깊은 곳은 "우리는 언젠가 꼭 다시 만나."라는 게 진실이 아니라, "언젠가 모두 이별하는 거야."라는 게 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진실이 어느 쪽이든, 결국 우리가 해야할 일이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달려가고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자 한다면, 역시 우리가 할 일이란 그만큼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날 여지 없는 이 짧은 생을 한 번 살고 떠나는 것이라면, 그렇게 모두 잊고 지워지는 것이라면, 역시 우리는 이 한 번 뿐인 삶을 그저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일생에 딱 한 번 허락된 에버랜드에 온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너무 부수적인 것들에 신경쓸 게 많다보니, 그런 삶의 핵심이랄 것을 잊고 지내게 된다. 매일 해치워야 될 온갖 일들과 걱정들, 부담들, 신경쓸 것들에 파묻혀 있다 보면, 내 삶이 지금도 한번 뿐인 풍경들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는 걸 잊게 된다. 그것은 어딘지 어리석인 일 같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삶을, 시간을, 이 어떤 순간의 덩어리를, 곰인형 끌어안듯 꽉 끌어 안아야만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손을 뻗어, 그 옆에 있는 토끼 인형도, 고래 인형도 이 품에 끌고 들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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