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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정한 실용주의

by 정지우
priscilla-du-preez-ELnxUDFs6ec-unsplash.jpg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살아가면서 경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권력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이다. 그러나 사람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는 멀어지고, 권력관계에만 길들여지기가 무척 쉬운 듯하다. 나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나의 윗사람, 나보다 더 권력 있는 사람인 '갑' 또는 반대로 내가 '을'이 되는 관계만 맺다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다른 류의 관계가 있다는 걸 쉽게 망각한다.


권력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우리 사회 또한 갑질사회로 오명을 높여가는 것은 그런 '권력관계'가 점점 더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는 돈을 주는 입장에서 갑질하고, 생산자는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을이 된다. 그러나 생산자는 또 직장 내에서는 갑의 위치에서 아랫사람에게 갑질을 하거나, 다른 곳에 가서는 소비자인 왕이 되어 갑질을 하게 된다. 이런 관계들이 악순환처럼 퍼져 나가면, 이윽고 사람을 삼켜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별 이익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런 권력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오히려 그런 인간관계가 그에게 진정한 '삶의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관계가 권력 속에서 병들어가는 그의 자아를 건져내고, 삶에는 다른 영역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도와줄 수 있다. 권력에 짓눌린 자아가 그로부터 벗어나 유영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줄 수 있다.


권력에만 길들여진 자아는 끊임없이 평가에 노출된 자아이기도 하다. 타인들의 평가에 의해 내 자아의 높고 낮음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권력의 지위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공감과 위로와 응원을 나누는 일이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삶에 권력관계 외에 다른 관계가 있다는 걸 이해하고, 서로에게 권력으로부터 벗어난 시공간을 제공해준다.


물론, 세상의 어떤 관계는 권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가령, 직장 관계라든지 거래처 관계 같은 경우는 권력으로 맺어져 있고, 이를 해소한다는 게 쉽지 않다. 오히려 핵심은 권력에 너무 오염되지 말아야 할 관계에 권력을 '묻히는' 것이다. 친구, 연인, 가족 관계 등은 서로를 권력으로 평가하고 억압하며 자아를 위축시키거나 확대해야 할 관계가 아니라, 자아를 풀어헤치고 만나 안아주어야 할 관계다. 이 관계들을 권력 외부에 두는 것이 사실상 인간의 능력인 것이다.


삶은 그렇게 위축된 자아가 풀려나는 곳에서 반짝이며 피어난다. 우리는 권력망으로 짜인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살아가지만, 그 그물망으로 완전히 덮을 수 없는 여백의 공간에서 삶을 피워 올린다. 그 공간에 사람이 있고, 사람과 사람의 마주침이 있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있다. 그 공간과 마주침,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의 '진짜 이익'이다. 그 진짜 이익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실용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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