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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by 정지우
nathan-dumlao-EdULZpOKsUE-unsplash.jpg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인생에는 끊임없이 바보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살게하는 건 작은 사랑들인 것 같다. 때로는 나의 일상에 침범해버린 어떤 존재들이 커다란 스트레스를 준다. 때로는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는 나머지 그만 살고 싶다. 때로는 너무 멍청한 실수를 한 자신이 밉고, 나의 호의를 거절한 누군가 때문에 너무도 속이 상한다. 그 모든 게 인생을 살기 싫게 만들지만, 어느 작은 사랑 때문에, 다음 순간이면 그 모든 걸 잊어버린다.


잔뜩 스트레스를 머금고, 폭발할 것처럼 나 자신과 인생이 미워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손을 마주 잡는 순간, 그 모든 게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어제 알게 된 좋은 노래나 계절이 바뀌며 핀 새로운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존재 때문에, 나의 고민들은 다 바보같이 느껴진다. 갑자기 내 안에 있던 수많은 고민들이 다 하찮은 것으로 느껴진다. 삶과 음악과 풍경과 맛있는 음식이 여기 놓여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싶은 것이다.


인생의 철학자는 어린 아이 앞에서 바보가 된다. 한껏 인상을 쓰고 회의주의적이거나 염세주의적으로 인류의 미래와 인생을 고민하던 철학자는, 삶이 너무 좋아 깔깔대며 눈 앞에 뛰어다니는 아이 앞에서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앎을 사랑한다는 핑계로 삶을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벼락 맞듯 알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작은 사랑, 삶에 대한 진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떨쳐낼 수 없었던 인생의 어떤 중압감, 한없이 무거운 삶의 무게,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고민에 짓눌린 채 길을 걷던 한 중년 남자는, 크리스마스 전구 아래에서 깔깔대는 연인들 곁을 지나다가 깨닫는다. 자신도 오늘 밤, 그저 몇 시간 정도는 그 모든 고민에서부터 해방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말이다. 하루 중 여덟시간을 짓눌려 살더라도, 몇 시간 정도는 그냥 이 전구와 트리와 캐롤을 그냥 하염없이 사랑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날, 그는 집으로 들어가며 가족에게 줄 작은 선물을 살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자아란 어떤 것이며,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없는 고민으로, 바다에 반쯤 잠겨 살아가는 듯한 어느 청년은, 어느 날 자기 삶에 하나 없는 게 있는데, 그것이 작은 사랑이라는 걸 깨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자신이 책의 냄새, 집에서 기다리는 강아지, 가을 날 아침의 투명한 공기 같은 것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걸 불현듯 깨닫고, 이제 비로소 삶을 살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그런 것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짐 자무쉬의 영화 제목이다). 인생은 허망하고, 모든 기쁨이나 성취도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너무 많은 세월이 무언가를 탓하거나, 무언가 때문에 괴로워하다 지나간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 오직 작은 사랑들을 삶 속에 별빛 뿌리듯 가지고 있는 이들만, 주어진 시간을 삶답게 살아간다. 그렇게 그들만이 삶이라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온전하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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