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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유, 사랑의 방법

by 정지우
andres-molina-xGU-nvsd_4I-unsplash.jpg Photo by Andres Molina on Unsplash


사람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건 그 사람 전체 때문이 아니라 작은 부분 때문이다. 오히려 전체로 보자면, 누구에게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 자식조차도 못마땅하거나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의 전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가 가진 어떤 작은 부분들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 커플이 서로를 좋아하는 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의 모든 걸 좋아해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건, 그가 기분 좋을 때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미소의 순간, 일주일에 한번쯤 볼 수 있는 말괄량이 같은 표정, 함께 산책하며 걸을 때 잘 맞는 걸음의 속도, 서로가 공감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음악, 영화, 책,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의 몸짓 같은 것이다. 그 순간은 불현듯 찾아와 깊이 박히고, 잊을 수 없다.


자신의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다르지 않다. 아이랑 하루종일 함께 있는 동안, 아이의 모든 걸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 중 유달리 좋은 작은 순간들이 있다. 불쑥 건네는 아이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엄마, 사랑해."), 아이가 누워 있을 때 짓는 멀뚱멀뚱한 표정, 얌전하게 손을 잡고 따라오는 순간의 연약함, 씩씩하게 밥을 스스로 잘 먹는 모습, 같은 그 작은 순간들을 사랑한다. 사랑은 어떤 작은 것들에 머물고, 그것들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진다.


좋아하는 사람과 종일 마주앉아 수다를 떤다고 하더라도, 역시 그 사람의 모든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다. 누구의 이야기도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귀기울이며 좋아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중간중간 던지는 어떤 농담이 좋고, 어떤 호의어린 잠깐의 관심이 좋고, 통찰력을 보여주는 몇 문장의 이야기가 좋은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전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부분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이나 좋아함이라는 건, 때론 어떤 능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그가 몇 가지 흠결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혐오하지 않을 능력, 그가 몇 가지 단점이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능력, 다시 말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점 때문에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능력이 없으면, 사실 우리는 누구도 오랫동안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거기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사람을 좋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셈이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지만, 찾는다 하더라도 금방 질려하거나 미워하게 될 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그 누군가와 호감을 주고받고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견뎌줄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서로를 견뎌주는 순간이 있다.


한편으로 요즘 세상은 점점 너무 쉽게 타인에 대한 극혐, 비호감, 참을 수 없는 신경질적인 부분들을 찾아내고 확대하기를 권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너무 잦은 거절들만 이어지다 보면, 우리 곁에는 나를 증거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그 누군가와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사랑할 디테일들을 찾아내며, 동시에 나머지를 견딜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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