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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5. 2022

나는 산소 호흡 하듯이 책을 읽는다

Photo by Sincerely Media on Unsplash


요즘 나는 산소 호흡 하듯이 책을 읽는다. 지하철에서, 아이가 잠든 밤에, 때론 회사의 점심시간에 삼십분이라도 책을 펼치고 본다. 책을 펼치면, 비로소 심신이 안정되고 나만의 세계가 이어지고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이 인도하는 삶, 책이 열어보이는 세계가 있어서, 이따금 물 밖으로 나와 호흡하는 고래처럼 매일 그 세계와 접촉해야 함을 느낀다. 

책 바깥에는 현실이 있는데, 그곳에는 정신없는 의무들이 있고, 잠시 넋 놓았다가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휩쓸림과 압박이 넘쳐나는 듯 느낀다. 그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하루 얼마간이라도 꼭 책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면 책 속의 언어들이 나를 지켜주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줄 것만 같이 느낀다. 

책이 어째서 내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청춘을 보낸 방식과 관련 있을 듯하다. 청년 시절, 나는 책이 길이고 미래이고 꿈이라 믿었다. 내 안에는 수만권의 장서가 있는 책의 세계가 있었는데, 내 삶의 여정은 그 도서관의 모든 책을 다 읽어 내고야 마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 고전들의 세계, 인간의 역사,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는 내 안의 서재가 내게는 도달하고 싶은 영토였다. 

어쩌면 지금도 산소호흡기처럼 책을 찾는 이유도,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책 속에는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가장 농축된 삶이 담겨 있다고 느낀다. 어느 사람을 만나 하루종일 이야기하더라도 들을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삶, 생각, 고민, 지혜가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 있다. 사실, 인생의 길이란 아무도 가지 않은 사막을 걸어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타인들을 만나며 그들을 참조하는 일이고, 조금씩 닮는 것이고, 따라하고 배우며 나아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최고의 길잡이인 셈이다. 

올해는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꽤 부지런히 만난 해이기도 했다. 내게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관해 듣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이 때론 비슷하다고 느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 삶이 조금 넓어지고 내 삶의 길을 조금 더 알 것 같다고 느낀다. 책도 비슷하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 삶을 여러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내가 갇혀 있던 삶에서 살짝 벗어난다. 

삶은 어딘지 삼보일배와 닮은 면이 있다. 세 걸음 정도 걸으면서 나아가고, 한 번 엎드려 멈추어선다. 멈추어서 사랑하고, 쉬고, 삶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세 걸음 정도 전진하면서 새로운 삶의 풍경에 들어서고, 조금의 성취를 얻고, 영토를 넓힌다. 그러고 나면, 다시 한 번 엎드리듯 멈추어서 머무르며 사랑할 시간이다. 그러고는, 다시 이 삶이 고여 썩어 들어가기 전에 세 걸음 나아가야 한다. 나에게 책은, 일배가 필요할 땐 멈추게 하고, 삼보가 필요할 땐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계속 책을 찾게 된다. 삶의 리듬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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