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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Nov 17. 2022

변호사가 된 이후 첫 무죄 선고

Photo by Tingey Injury Law Firm on Unsplash


변호사가 되고 처음 맡았던 형사사건이 이번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검사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고, 피고인도 사실 일체를 다 자백하는 사건이어서, 법리적으로만 다툴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도 자기가 한 행위를 다 인정하니, 벌을 받아야 되면 받겠다고 했던 터였다. 그래도 시간을 들여 판례들을 한 무더기 찾아보니, 죄가 될 수 없는 지점이 보였다. 자백 사건에서 양형만 다투어도 되지만, 나름대로 무죄를 밀어붙여 보았고, 결국 모든 공소사실에 무죄를 받아냈다. 


판사도 공판정에서 자백인데 왜 굳이 다투냐는 취지로 말해서, 같이 소송을 준비했던 변호사랑도 무죄는 안될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결과를 받고는 둘다 깜짝 놀랐다. 파트너 변호사도 오셔서, 형사사건 무죄는 정말 드문 일이고, 변호사 인생 전체에서도 쉽게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첫 사건에서 무죄 받았다니 축하한다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했다. 무언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어, 종일 기분이 좋았다. 


요즘 직장에서 가장 소중하게 느끼는 건 아무래도 일종의 동료애가 아닌가 싶다. 첫 재판을 갈 때, 다른 동료 변호사들이 다들 한 마디씩 조언을 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무척 고마웠다. 사건 하나하나를 함께하기도 하고, 서로 토론하고 묻기도 하면서, 확실히 배우는 것도 많고 든든한 느낌이 많이 든다. 지치거나 어려울 땐, 서로 위로도 해주고 이끌어주며 '같이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게 참 좋다. 


어쩌다보니, 형사사건을 많이 하고 있는데, 변호인으로서 해야할 역할이라는 것도 알아간다고 느낀다. 죄를 은폐하거나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방어해주는 게 변호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방어하지 않았다면, 검사의 구형대로 선고가 날 수도 있지만, 꼼꼼하게 법리를 따져보고 피고인 자신도 모르지만 감경될 수 있는 사정들을 찾아내다 보면, 피고인이 딱 받아야 할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게 해줄 수 있다고 느낀다. 때론 그게 처벌 없음, 무죄이기도 한 것이다. 애초에 형사처벌을 받으면 안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맡고 있는 사건도 점점 늘어나고, 재판기일도 촘촘하게 잡히고 있어서 도통 여력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실, 지난주와 이번주는 내가 건널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인 다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불길에 휩싸인 다리를 건너고나니, 건널 수  없어 보이는 것도 건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부쩍 성장한 느낌도 든다. 해낼 수 없어 보이는 걸 해내고나면, 사람은 성장하는 것 같다. 


아무튼, 근래의 어려움과 힘겨움이야 넋두리하듯 털어놓자면 하루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약간의 뿌듯함에 관해 남겨두고 싶다. 나도 점점 더 나의 일에서의 보람과 가치에 대해 알아갈 것이다. 거기에는 그만큼의 시간, 애씀, 정성, 어려움, 고생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그만큼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어려움을 통과하면, 가치를 얻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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