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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8. 2022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삶일 뿐이다

Photo by Evie S. on Unsplash


어떤 사람을 본다는 건 언제나 그가 살아온 삶을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 같다. 언제나 사람은 그가 살아온 삶으로서 그가 된다. 그의 표정, 말투, 생각, 일, 취향 그 모든 게 곧 그가 살아온 삶의 축적이다. 훌륭하거나 멋진 사람은 그렇게 태어났거나 원래 그렇거나 어느 날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건 어느 날 갑자기 개조인간처럼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존재'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한 삶을 쌓아가는 것이다. 시간을 쌓으면서 바로 그런 존재인 삶을 살아가면,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김연아는 정확히 말해 피겨 스케이팅 여왕이 아니라, 수십년간 매일 피겨 스케이팅을 했던 사람이다. 


삶으로 증명되지 않고 '다른 존재'가 되는 방법이 있을까? 아마 가짜나 사기, 속임수로는 가능할 것이다. 갑자기 어느 날부터 신앙심이 충만한 목사인 척 연기하던 어느 드라마 속 주인공은 마지막에 자기 삶의 그 모든 게 '가짜'였다는 걸 고백한다. 그러니까, 삶으로, 진심으로 쌓지 않은 '나'는 어디까지나 가짜를 연기하는 것 이상은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은 진짜 어떤 존재가 된다는 건, 하나같이 삶으로 증명하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 


좋은 작가가 된다는 건 매일 쓰며 타인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삶을 사는 것 그 자체일 뿐이다. 좋은 변호사가 된다는 건 좋은 변호나 대리를 많이 한 삶을 산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어느 날 개조하여 변신하는 게 아니라, 좋은 아빠로 오랜 시간을 살아낸 것이다. 삶을 축적하는 게 곧 존재인 것이다. 꾸준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 외에는 치장이고 허위이며 가짜이고 허영일 뿐인 것이다. 


어찌보면, 단순한 사실인데도 나는 이걸 최근에서야 제대로 안다고 느낀다. 우리는 자기가 살아온 삶 이외의 그 무언가가 될 수는 없다. 만약 지금껏 살아온 삶과 다른 그 무언가가 간절히 되고 싶다면, 오늘부터 새로운 삶을 쌓아야 한다. 관계나 사랑에서든, 일이나 직업에서든, 모든 것에서 마찬가지다. 갑자기 조급하게 무언가 될 수는 없다. 전지에 가는 펜으로 글자를 가득 채워넣듯, 삶으로 존재를 채워가야 한다. 


몇 년쯤 매일 글을 썼다면, 나는 몇 년쯤 매일 글을 쓴 사람이 된다. 그것이 나의 아이덴터티랄 게 된다. 몇 년 쯤 매일 아이랑 노래를 불렀다면, 나는 매일 아이랑 노래 부른 사람이 된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몇 년간 매일 달리거나, 악기를 배우고, 고전을 읽으면, 나는 그런 걸 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 외에 별도로 어디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내가 아는 모든 인간은, 바로 그렇게 자기 자신이 된다. 우리를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낸 삶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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