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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7. 2022

아이가 침입한 글쓰기 특강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아빠 친구들이야?" 아이가 무대에 올라와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사람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아마 이 날 강연 중, 가장 반응이 좋았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글쓰기에서 '대조' 혹은 '반전'의 중요성을 말하던 중이었는데, 바로 이런 게 반전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강연이라는 장면과 아이라는 존재의 모순과 대조, 이런 순간에 등장하는 아이의 존재, 이런 게 글쓰기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북토크를 하러 다닐 때, 나는 진행에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면 아이가 오가는 걸 그냥 두기도 한다. 아이에게 허용적인 사회의 중요성에 대해 늘상 글을 써대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실천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세상의 일들이라는 게 엄숙한 형식주의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공감과 대화로 넘쳐나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나는 약간 먼 지역으로 북토크 등을 하러 갈 때면, 일종의 가족 나들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김해에 강연을 가는 김에, 바다도 보고 케이블카도 탔다. 여러모로 힘든 여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또 추억 하나를 쌓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고 나면, 다 그리울 일들이다. 아빠의 북토크 무대에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올라오는 일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남았을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막 걷기 시작할 무렵, 북토크 도중 슬며시 내게 걸어왔던 시간이 생각난다. 부산에서의 북토크였는데, 아내와 어머니, 아이, 그밖에 당시 부산에서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던 사람들도 있던 작은 파티 같은 자리였다. 그리고 언젠가 제주도의 한 서점에서 아이가 잠시 함께했던 적이 있고, zoom 북토크 때는 내 품에서 잠들었던 적도 있다. 그렇게 내 곁을 따라다니는 한 작은 존재가 있는 시절인데, 이 시절도 끝나간다. 


김해에서는 어느덧 오랜 인연이 된 정인한작가를 만났다. 공항까지 데리러 와주어서 참 고마웠다. 실제로 만나는 건 부산에 살았던 때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벌써 2, 3년 만인가? 잘 믿기지 않는 세월이다. 카페를 하며 비교적 한적한 도시에서 누리는 평화로움이 좋아 보였다. 김해 평야와 부산의 바다를 보고 나니, 나는 무엇을 좇아 그리도 복잡다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잠시 벤치에 앉아 소나무 사이로 빛나는 바다를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 부는 가을 바다를 앞에 두고, 좋아하는 사람과 하루종일 수다나 떨면서, 느긋한 햇빛 아래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 삶이 분명 '꿈'은 맞는데, 왜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 꿈이 망상이기 때문인지, 역시 "꿈은 꿈일 뿐"인 것인지. 


요즘에는 바다에 올 때면, <위대한 개츠비>가 그렇게 생각난다. 수평선을 볼 때면, 저 수평선에 있는 빛이 닿을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게 궁극의 자유 같은 건 없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작은 자유들을 누리며 사는거지, 하고 말한다. 나도 알긴 알아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왠지 또 그런 자유로운 바다가, 그런 삶의 평화가 꼭 있을 것만 같아서, 미련을 떨쳐낼 수 없다. 


아무튼, 그런 꿈에 대한 미련을 또 한 줌 쥐고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기차에서의 내 품에는 아이가 안겨 잠들어 있고, 아내도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삶을 좋아한다. 정신없이 바쁘고 하루도 피곤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그래도 셋이서 바다를 보고,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케이블카를 타고, 공룡이나 장난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시절이 좋다.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더 좋아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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