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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Nov 30. 2022

온 힘을 다해 노는 아이와의 시절

Photo by Alvin Mahmudov on Unsplash


요즘 아이는 '싸우기 놀이'에 심취해 있다. 친구들끼리는 그러지 않는 모양인데, 집에만 오면 어떻게 나랑 싸워 이길지에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하는 듯하다. 어제는 "기어다니는 동물로 싸우자."라고 해서, 침대에서 한참 동물 흉내를 내며 싸우고 놀았다. 그러면서 내일은 "공룡으로 싸우자."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는 아이가 나한테 온 힘으로 덤비는 걸 보면서, 새끼 사자같다고 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새끼 사자들이 부모 사자한테 덤비고 물고 구르면, 부모 사자가 귀찮은 듯이 앞발로 한 대씩 쥐어 박아주는 것과 꼭 같다는 것이다. 돌격하여 박치기 하고, 팔을 휘젓고, 베개를 던지면서 온 힘을 다해 덤비지만, 아빠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갈수록 제압하는 게 조금씩 버거워지고 있긴 하다. 


아무튼 온 몸의 힘을 다하여 들이 받으며 노는 시간, 아이는 가장 행복해 보인다. 얼굴이 벌개져서 헥헥거리면서도 쉴 새 없이 깔깔대는 게, 그렇게 행복한 얼굴의 사람을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싶다. 어제는 아이가 너무 흥분해서 제압한 다음에 눕혀 두고 "잠깐만 쉬자!"라고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아이는 강아지처럼 엎드려서 헥헥 거리다가 "이제 다시 싸워도 돼?" 하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아이가 그렇게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을 실험하고, 무언가 에너지를 '끝'까지 써본다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무조건 억압하고 절제하게만 요구해서는, 어딘지 병들어 버릴 것 같다. 평소에 아이는 절제력이 뛰어나서 저게 아이가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만화를 딱 2편만 보기로 약속하면 알아서 보고 끄고, 사탕을 하루에 한 개만 먹기로 하면 딱 하나만 먹는 식이다. 그러나 또 풀어 헤칠 때는 온 힘을 폭발시킬 줄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로서는 맞상대를 해주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과연 이 날들을 얼마나 기억할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이의 생각, 의지, 취향, 도전, 실험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너무도 생생한 한 사람으로 다가오고 기억되겠지만, 아이는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게도 그 나이대의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것과 상관 없이, 나는 일종의 기념비가 된다는 생각으로 이 삶에 임하고 있다. 네 살짜리 너와는 이제 곧 끝이고, 너도 기억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나를, 이 삶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그 온 에너지를 받아준다.


어디를 가나 아내와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옆에 찰싹 붙어 다니는 이 꼬마 사자와 작별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거의 매일 생각한다. 머지않아 무뚝뚝한 청소년이 되고,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삶을 일구어야 할 때가 오고, 그러면 나도 달라지고, 너도 달라져서, 나는 다른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기억을 어떻게 잊을까? 이 꼬마 사자가 내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꼬마에게 들이 받히던 날들이, 내가 인생에서 잘 살아낸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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