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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13. 2022

아빠는 꼴등으로 사랑해.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아이에게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물으면, 항상 "꼴등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일등은 당연히 엄마인데, 그럼 아빠 말고 누구를 사랑하냐고 물으면 엄마 아빠 말고는 아무도 안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사실 나는 꼴등이 아니라 이등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냥 내버려둔다. 아이가 나를 놀리고 싶어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가, 아내에게 문득 "그렇군, 나는 평생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잖아."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평생이 걸려도, 아이가 일등으로 나를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꽤나 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고자 매일같이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의 목표가 '일등으로 사랑받기'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매일 노력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일은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어떤 일은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일 자체로서 한다. 아이에게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쓰고, 동화책을 하나라도 더 읽어주고, 새로운 곳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는 건, 무언가 이룰 수 없는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내가 준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 받겠다든지, 노력 만큼의 보상을 얻겠다든지 하는 것과 빗겨나 있다.


그건 그냥 이룰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하는 일이다. 이 나날들을 사랑하고 털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저 눈 앞에 아이가 있고, 아내와 우리가 여기 이 시절 함께 셋이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살아내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괜찮다. 일등이 못 되어도 되고, 나중에 받는 보상이 없어도 된다. 그저 나는 이 시절을 책임지고, 사랑하고, 떠나보내고,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들로 점철되어 있다.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열심히 구애를 한다. 그러나 때로 어떤 일은 그냥 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하는 일들이 삶의 핵심 언저리에 있을지도 모른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 일리치는 평생 모범생으로 살다가 승승장구하는 판사로 임용되었지만, 정작 죽음 앞에서 떠올리는 건 주위 사람들과 하던 '카드놀이'였다. 나머지는 다 가짜 같이만 느껴졌고,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었다고 느끼게 한 것이 카드 게임하는 순간의 순수한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승진하고, 집을 늘이고, 사회적으로 인맥을 넓히는 것 같은 것들은, 이상하게 모두 가짜 같았다. 


나는 죽기 전에 무엇을 떠올릴지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시간을 진짜로 사랑했는지, 어떤 시간을 가장 좋아했는지, 어떤 시간에 진심이었는지 생각한다. 아마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말하자면, 꼭 일등 안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시간이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느낀 마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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