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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Nov 10. 2022

삶에서 책임을 알게 된다는 것

Photo by Omar Lopez on Unsplash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내가 책임질 것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게 책임질 나의 아이나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모든 것을 덜 견뎌냈을 것이다. 쉽게 포기하거나 관두고 도망친 기억들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책임질 것이 있어서, 쉽게 도망치지 않고, 제멋대로 살지도 않으며, 나의 기질과도 싸워 이기곤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 내게 이렇게 지키고 책임져야 할 게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금방 직장을 관두거나 하기 싫은 일은 피하면서 제멋대로인 자유인 흉내 내며 살고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백번 공감한다고 했다. 그 대신, 이제는 무엇이든 견뎌내며 감내하고 그 속에서 길을 찾는 법을 배운다. 


결혼과 불가역적인 아이의 탄생 이후, 나는 매일을 붙잡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고 지켜야만 하는 입장이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무엇에 대해서도 너무 경솔해서는 안되고, 징검다리 건너듯 신중하게 삶을 건설하지 않으면, 나는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없다. 그것이 내 삶에 더 디테일한 고민들과 선택들을 만들어낸다. 


가령, 예전 같았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하고 싶다면 그냥 다른 것들을 미뤄두고 해보면 되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그만이었다. 때려치우고 싶은 건 때려치우면 되었다. 그 동안 통장 잔고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별 상관 없었다. 한동안 가난하게 살다가 또 열심히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도, 하루하루의 삶을 유지하는 가운데에서 조심스럽게 이것저것을 더하는 방식으로 야금야금 해봐야 한다. 삶을 쉽게 내팽개치지 않으면서도, 삶을 조금씩 개척해가야 한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삶을 더 정성스럽게 만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일 적에는, 내 마음가는대로만 살다가 어느 날 비명횡사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믿기도 했었다. 청춘다운 마음이라면 그런 것이고, 나의 약간 망상적인 기질 때문이라면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삶, 그리고 우리의 삶을 강하게 책임지는 존재가 되었고, 그것이 나 자신도 더 낫게 만든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이제 가족을 위해서라도 건강 관리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때면, 나는 거의 항상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이 구절은 10년도 더 전에 읽었지만, 그때도 너무 강렬하게 와 닿았고, 지금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구절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내게 그 구절은 '나를 강하게 하는 건 책임이었다.'로 다가온다. 책임을 지면, 강해진다. 삶을 신중하고 더 정확하게 놓지 않고 지키며 만들어간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을 갓난아이처럼 품에 끌어안고, 투명한 시야로 숲 너머를 바라보듯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그 품에 안은 것을 놓지 않고, 가시덤불을 지나고, 맹수를 따돌리면서, 수분을 보충하고, 그 와중에 버섯을 찾아내어 먹고, 하룻밤을 보낼 움막을 짓고, 그렇게 어떻게든 그 숲을 지나, 들판을 찾아, 울타리와 집을 지을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별이 뜬 밤이면,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햇살 맑은 날에는 풀피리도 불면서 그 시간을 사랑하기도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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