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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02. 2022

기도와 용기에 관하여

Photo by Patrick Fore on Unsplash



얼마 전, 함께 했던 대담 자리에서 김정주 작가는 '기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벽에서 물이 콸콸 새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일시적으로 위안은 얻을 수 있겠으나 물이 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도만으로는 현실의 모든 게 해결되지 않으므로, 현실을 현실대로 올바로 직시하고 제대로 해결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새는 물'을 막을 용기에 관해 생각했다. 이를테면, 기도란 그 물을 막기 위한 용기를 달라고 해야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약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물을 막을 용기가 없어 눈을 감고 기도만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벽에서 새는 물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가 달려가 저 물을 막을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가 진정한 기도를 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그 이야기를 사회 전체로 바꾼다면, 사회에 새는 '구멍'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회의 구멍이란, 일종의 차별, 불평등, 부당함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모두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사회의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 구멍을 응시하며 용기를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김정주 작가와 함께 했던 대담 자리에는, 허태준 작가도 함께했다. 우리는 청춘 시절의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 시절의 글쓰기란 어떤 '반항'에 초점이 있었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허태준 작가는 청년 노동자에 대한 글을 썼다. 사회가 호명조차 하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김정주 작가는 세상의 낙인이나 편견과 싸웠다. 목회자의 가난, 교회에서의 선입관에 관해 썼다. 나도 그 시절 청년으로 살아가는 일과 우리 사회의 차별, 증오, 분노에 관해 쓰고자 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글쓰기에는 나름대로 젊은 날의 용기랄 게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에도 그런 용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스스로의 자기 방어나 자기 합리화랑 싸우는 일은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인간은 너무 쉽게 회피하고, 너무 쉽게 자기 합리화에 빠져 들어서, 진짜 문제랄 것을 너무 자주 놓치고, 그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만큼의 용기를 낸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은 듯하다. 


목회자이기도 한 김정주 작가는 기도도 좋지만 결국 현실은 그와 별도로 잘 '빌드업'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아주 공감해서, 나도 내 삶이 위로나 위안, 회피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삶에는 위로나 위안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쌓아나가는 힘과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 더 넓은 현실에 반항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에게 기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언제나 용기에 관한 일일 것 같다. 나를 이겨낼 용기, 이 다음을 믿을 용기, 현실을 직시할 용기, 현실에 맞설 용기가 언제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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