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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05. 2022

포르투갈전 손흥민 인터뷰를 보고 놀란 이유

사진출처 나무위키


새벽에 손흥민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부족함과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겸손함, 과거 경기에 대한 아쉬움 이야기까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한 이야기가 무척 놀라웠고 마음을 울렸다. "가장 감사한 것은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가 (관중석이 아닌) 벤치에서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 말은 정말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선수와 감독의 관계랄 것에 대해 별로 이해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단순히 감독이 관중석에 있어서 경기가 다소 불안하거나 한 게 아니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눈물 날 정도로 아쉬웠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 치열하게 함께하며 서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에 관중석에 있어야 했던 감독을 보며 단순한 걱정 보다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 깊은 동료애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구나 싶었다. 


특히, 그 순간 자신의 기쁨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더 생각한 손흥민의 태도가 참 뭉클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가지 못했던 16강에 간 것도 너무 기쁘지만, 그렇게 상대 팀에 이기고 '올라간 것'도 너무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지만, 그보다 감독과 함께했던 마지막 경기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경기란 이기기도 하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허무하지 않은 끝을 이루는 것,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요즘 들어, 내가 가장 감동하는 순간은 거의 그런 순간인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타인들의 손을 잡고자 하는 순간 말이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16강에 올라간 것도 신나는 일이었지만, 아마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손흥민 인터뷰의 마지막 한 마디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가장 자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법한 순간에도, 타인의 마음과 감정으로 건너뛰어 들어가는 순간 말이다. 


스포츠가 감동적인 건 자기 극복의 열정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동료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들이 묻어나고, 그렇게 함께하는 기뻐하는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료가 골을 넣는 걸 자기가 골을 넣은 것처럼 기뻐하고, 나아가 그걸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그 함께되는 순간이 참으로 드물고 감동적인 일이다. 이런 함께함, 함께함을 생각하고 기뻐함, 함께함을 바라는 이 마음이 오랜 기억이 되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각자 나 잘났다, 내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명제를 내세우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순간에만큼은 그 반대를 배운다. 네 덕분이다, 너와 함께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 같은 마음을 배운다고 느낀다.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 어쩌면 그 마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스포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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