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손흥민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부족함과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겸손함, 과거 경기에 대한 아쉬움 이야기까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한 이야기가 무척 놀라웠고 마음을 울렸다. "가장 감사한 것은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가 (관중석이 아닌) 벤치에서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 말은 정말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선수와 감독의 관계랄 것에 대해 별로 이해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단순히 감독이 관중석에 있어서 경기가 다소 불안하거나 한 게 아니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눈물 날 정도로 아쉬웠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 치열하게 함께하며 서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에 관중석에 있어야 했던 감독을 보며 단순한 걱정 보다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 깊은 동료애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구나 싶었다.
특히, 그 순간 자신의 기쁨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더 생각한 손흥민의 태도가 참 뭉클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가지 못했던 16강에 간 것도 너무 기쁘지만, 그렇게 상대 팀에 이기고 '올라간 것'도 너무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지만, 그보다 감독과 함께했던 마지막 경기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경기란 이기기도 하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허무하지 않은 끝을 이루는 것,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요즘 들어, 내가 가장 감동하는 순간은 거의 그런 순간인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타인들의 손을 잡고자 하는 순간 말이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16강에 올라간 것도 신나는 일이었지만, 아마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손흥민 인터뷰의 마지막 한 마디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가장 자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법한 순간에도, 타인의 마음과 감정으로 건너뛰어 들어가는 순간 말이다.
스포츠가 감동적인 건 자기 극복의 열정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동료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들이 묻어나고, 그렇게 함께하는 기뻐하는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료가 골을 넣는 걸 자기가 골을 넣은 것처럼 기뻐하고, 나아가 그걸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그 함께되는 순간이 참으로 드물고 감동적인 일이다. 이런 함께함, 함께함을 생각하고 기뻐함, 함께함을 바라는 이 마음이 오랜 기억이 되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각자 나 잘났다, 내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명제를 내세우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순간에만큼은 그 반대를 배운다. 네 덕분이다, 너와 함께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 같은 마음을 배운다고 느낀다.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 어쩌면 그 마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스포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