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Jan 05. 2023

작가들의 가장 큰 고민

Photo by Amelia Bartlett on Unsplash


흔히 사람들은 작가들이 할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작가들의 최대 고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작가들의 상당수가 사석에서 매번 더 이상 쓸 게 없다는 고민을 토로하곤 한다. 사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유명 작가의 책들을 봐도, 경력이 길어질수록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작가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느낄 때는, 스스로 어떤 틀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가령, 청년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주목받은 작가는 평생 청년 이야기만 해야될 것 같은 내면의 강박을 느낀다. 사회문제를 지적하며 데뷔한 작가는 평생 사회문제만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잔잔한 사랑 이야기로 명성을 얻은 작가는 평생 은은하고 잔잔한 이야기만 해야할 것처럼 느끼다가, 한계를 맞이한다. 


이는 일종의 자기 안의 독자와 자기 자신이 맺은 관계에 스스로 갇힌 것과 흡사하다. 사실, 이럴 때 작가가 해야하는 것은 과감하게 더 진실한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이야기한 작가가 자기계발서를 쓸 수도 있고, 잔잔한 시를 쓰던 작가가 호러나 SF 소설을 쓸 수도 있다.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던 작가가 다음 책에서는 노년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게 실제 인간이고 인생이다. 


우리는 살아나가면서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나아가 우리 존재, 우리 삶 자체가 복합적이다. 가령, 사회를 비판하면서 성장한 교수는 사회 문제를 대할 때는 '비판적 지식인'의 자리를 점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볼 때는 교수라는 성공한 직업을 얻은 '자기계발의 화신'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무척 중시하는 사람이, 경영을 하거나 사회 관계에서는 매우 냉철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도 있다. 글쓰기도 그 모든 측면에 걸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도 자기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한 작가에게, 그냥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의 시선으로 글을 쓰면 되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글쓰기란, 사실 내면에서 어떤 추상적인 독자라는 타자와 맺는 관계로 성립된다. 그 타자는 글쓰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어떤 일관된 존재가 된다.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존재'에게 스스로 구속될 수 있다. 


그러나 나만 하더라도, 그런 '내면의 시선'에 너무 신경쓰기 보다는, 나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좇아가려고 하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쓴 글과 책은 온갖 영역으로 뒤섞여 있다. 청춘, 사랑, 여행, 사회문제, 행복, 글쓰기, 사회학, 심리학 등 그 때 그 때 나의 관심을 좇아 계속 살아오듯 글을 썼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을 쓰고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중동의 전쟁사나 병아리 감별법이나 경비행기의 구조에 대해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유'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넓지 않은 한계 속에 살아간다. 다이나믹하게 바뀌기 어려운 직업과 직장, 주변 관계, 크게 바뀔 것 없는 자아 정체성, 나아가 각종 관습 속에 우리는 갇혀 있다. 그러나 글쓰기는 우리를 백지 위에 풀어놓고, 우리에게 무엇이든 쓸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준다. 어제 냉철한 분석가처럼 분노사회에 대해 쓴 나는 오늘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사랑하는 일에 관하여 쓸 수도 있다. 바로 그럴 수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