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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Nov 21. 2022

글쓰기의 기적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글쓰기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이야기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을 고르고 싶다. 도저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이야기, 이전까지 차마 입밖에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 타인에게 말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웠던 이야기, 내가 이야기한들 아무도 경청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처음 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서 결정적인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간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어떤 이야기들은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안의 동굴에 갇혀 버린다.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는 말해선 안된다고 믿는 어떤 이야기가 내 안에 쌓인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거나, 따돌림 당하거나, 말할수록 배제되고 소외될 거라고 믿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무에게도 해선 안된다고 믿는 이야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 

보통 그런 이야기는 열에 아홉은 '상처'와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내가 입은 상처는 이상하게도 나에게 치부처럼 자리잡고, 나의 결함이나 나의 누추함, 나의 망가짐이나 초라함을 증명하게 되는 것만 같다. 왜인지 그런 상처들은 필사적으로 숨기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더 상처를 입거나 초라해질 뿐이라고 믿어진다. 

글쓰기에 하나의 기적이 있다면, 바로 그렇게 남들에겐 결코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이야기들이 쓰이는 순간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렇게 쓰인 이야기를 누군가 읽고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이 그 이상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읽고,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멈추고, 글쓴이를 떠올리고, 잠시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다음 장으로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된다. 거기까지 간다면, 글쓴이는 인생에서 어떤 다리를 건넌 셈이 된다. 

자기의 인생을 검은 잉크로 백지에 눌러서 새겨 넣을 때, 마치 몸 속에서 영혼의 일부를 뽑아내듯 우리는 그 이야기와 아주 살짝 분리된다. 그리고 그 '살짝 분리'되는 경험이 계속 이어지면, 그러니까 쓰고 또 쓰다보면, 그 살짝이 겹겹이 쌓여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그 이야기를 써냈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건네졌고, 그래서 계속하여 희석되고 또 희석되고, 여기저기로 분화되고 또 분화되어, 어느덧 그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 그 이야기로부터 해방됨을 경험하기도 한다. 

나는 글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해방에 관하여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해방이 우리를 어떻게 다음의 삶으로 데려가는지, 우리가 어떻게 삶 앞에 다시 서게 하는지에 관해서도 아마 짐작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해내는 것이, 결국 나의 글쓰기와 맞닿아있는 어떤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 마음과 마음의 연결과 삼투, 뒤섞임, 희석이라는 것도 아마 대개 느끼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삶으로 걸어나오는 사람들, 그러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만나왔다. 그래서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나, 하고 믿기도 한다. 마치 예수의 기적을 본 사람이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듯이, 나도 글쓰기의 기적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경험하며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힘의 실체에 관하여 더 믿을 수밖에 없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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