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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26. 2022

글쓰기 실력 향상의 비결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지난 몇 년간,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사람들의 글쓰기가 비약적으로 좋아지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모임 전에는 한 번도 글쓰기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글을 쓰게 되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그게 신기하기만 했지, 매커니즘은 잘 몰랐다. 무언가 모임 안에서의 일이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한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나도 잘 몰랐다. 


그러나 그게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는 건, 계속 이어간 모임과 새로운 사람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나 자신은 글쓰기가 좋아지는 데 10년은 걸린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과정을 두세달 만에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시선의 명료함'이다.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그 10여명의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꼼꼼하게 읽고 보고 있으리라는 그 '시선'의 존재가 글쓰기를 아주 정교하게 만든다. 그 사람들이 그냥 가볍게 읽고 대충 이야기해주는 게 아니라, 다들 정성들여 읽고 진심으로 좋은 점과 부족한 점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글쓰는 사람은 단어와 문장, 문단의 논리성, 독자에게 전달되는 효과, 글 전 체의 메시지 등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귀기울여 듣다보면,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문장이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어떤 느낌과 효과를 주게 되는지, 그래서 어떤 걸 쓰면 좋고 아니면 좋은지 등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 디테일한 '인식'은 그만큼 디테일한 '시선'으로부터 온다. 글쓰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거의 결정적일 정도로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용기'다.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걸 감수할 용기, 내가 결코 완벽한 문장들만 쓸 수 없다는 인정, 또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감정적인 적개심을 갖는 게 아니라 서로가 더 성장하길 진심으로 믿으며 서로의 글을 보아준다는 믿음, 그런 것들이 다 일종의 용기에서 시작되며 용기의 관계들을 맺어나갈 때 성립한다. 용기가 없으면 그 단계로 진입 자체를 할 수 없다. 


사실, 모든 일에는 그렇게 자기의 문제, 실수, 약점, 실패, 결점을 인정할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은 거의 그런 것들만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두 집단을 나누어, 한 집단은 특정 지식을 여러 번 읽게 하고, 한 집단은 한 번만 읽게 한 후 문제를 풀게 해서 틀린 걸 체크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후자의 집단이 훨씬 성취가 좋았다는 식의 실험은 이제 매우 유명해졌다. 틀리지 않으면 습득할 수 없다. 차를 한번도 긁지 않고 운전을 잘하게 된 사람도 없다. 


물론, 그렇게 무언가를 할 줄 알게 되더라도, 그 이후에 계속하지 않으면 그 감각들을 금방 잃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본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본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더 이상 쓰지 않고 그 '시선'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두 가지다. 상흔을 입으며 정교함을 익히고 난 다음에는, 매일, 계속해야 한다. 삶에서의 능숙함과 관련된 문제는 거의 그 두 가지로 수렴되는 듯하다. 용기로 습득할 것, 인내로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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