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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an 09. 2023

더 글로리, 재벌집 막내아들, 뉴진스, 그리고 글쓰기

Photo by Kenny Eliason on Unsplash


최근 사회적으로 '과거'에 대한 관심이 은근하게 폭발하고 있는 걸 느낀다.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 인생을 바꾸는 이야기, 과거 학폭에 대한 복수를 다룬 드라마, 나아가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아이돌 뮤직비디오 등은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뚜렷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그 모든 게 '과거'에 대한 집착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보면, 미래에 대한 관심은 갑자기 수그러든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미래는 관심가질 만한 '기대'로 가득 차있지 않다. 당장 기후위기는 모두가 매일 외면하고 있는 미래이고, AI의 발전으로 잃게 될 직업이나 급격한 변화, 추가적인 금리 인상으로 도래할 경제적 불안 등도 모두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미래다. 더군다나 한국은 이제 당면한 현실이나 다름없는 저출생과 고령화에 대해서 사실상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하나 더 생각해볼 점은, 우리가 과거에 대해 '생각'할 시간 자체를 총체적으로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거나 돌아볼 시간 자체가 없다. 마치 그런 '과거의 상실'을 막아보려는 듯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지만, 찍은 사진을 다 돌아볼 시간도 없다. 사진은 찍어서 SNS에 올리고 나면, 내가 시간을 저장하고 간직했다는 '위안'만 남긴 채로 현재에서 사라진다. 우리 머릿속은 역사상 이례적일 정도로 정신을 빼앗는 온갖 현재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과거'에 대한 온갖 콘텐츠들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을 매만지고 다룬다는 느낌을 준다. 길을 걸으면서도, 지하철에 타서도, 화장실을 드나들면서조차 과거를 회상하고 자기를 성찰할 여백조차 없는 이 '대현재의 시대'에서, 과거를 버려두었다는 죄책감을 저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해소해준다. 과거를 바꾸든, 돌아가든, 기억하고 복수하든, 과거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무언가 온당한 것이 돌아온 느낌이 든다. 

우리 시대 급속도로 폭발하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지식인들은 사람들이 책은 읽지 않으면서 글만 쓰고 싶어한다는 비판을 하곤 하지만, 사실 이 시대만큼 개개인들에게 글쓰기가 절실한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글쓰는 시간 만큼은, 우리가 현재에서 해방되어 잠시라도 지나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님에 대해서든, 자신의 지나간 꿈이든, 자기 자신의 성격에 대한 성찰이든, 그 모든 건 '정지'와 '대상화'를 필요로 한다. 글쓰기는 그 형식을 확보해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구호는 정확히 20년 전 월드컵의 '꿈은 이루어진다'랑 비교했을 때, 미래적이기 보다는 확실히 과거적인 구호이다.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로 가기 보다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마음을 반드시 지켜내자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래를 직시하기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과거를 잊은 시대에, 비로소 다시 과거를 찾고자 두리번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삶에서도 일종의 진정과 성찰, 돌아봄이 필요한 시절은 맞을 것이다. 한동안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된다면서 초조하게 곤두세우고 있던 마음도 진정시키고, 보다 소중한 것들을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절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 과거에는 이미 더 이상 타인의 것을 좇지 않아도 될 만큼 온갖 값진 기억, 추억, 의미 같은 것들이 가득할 수 있다. 우리 삶이 뿌리내리고 기댈 수 있는 것들도, 그렇게 과거에 가득할 수 있다. 이 시절의 맹점은 과거의 부활과 확실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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