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는 사람은 언젠가 '세상에서 나만 잘났다.'라는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그런 태도가 다소 필요하기도 하다.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고유한 이야기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라는 다소 근거 없는 믿음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오만이 추진력이 되는 시점이 있다.
그러나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그런 오만을 넘서야 할 때가 온다고 느낀다. 세상에는 나의 감성만이 최고인 게 아니라, 그저 다양한 감성들이 풍요롭게 세상 여기저기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는 나의 입장이나 의견만이 옳은 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누구의 의견도 틀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몇 년 전 쓴 자신의 글을 보고 오글거림에 몸부림치거나 잘못 생각했다며 책을 불사르고 싶다는 작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작가들은 글을 계속 써나가면서 어떤 진실을 마주했다고 생각한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없듯, 우리 인생에도 절대적인 진실을 손에 쥐는 일은 많지 않다. 대개는 그 시절 나의 마음이나 생각 정도가 그 시절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사실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세상에서 '나만 잘났다.'라는 태도가 부끄러워진다. 이를테면, 같은 사건이나 이벤트에 대해 쓰더라도, 100명이 쓰면 100명의 가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 있다. 그 누군가에게 나의 사랑 이야기만을 100년 내내 들려주는 게 가치 있을까, 100명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가치 있을까? 나는 후자일 거라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조금 고되긴 했지만 다양한 문인이나 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전에 기대는 시간>이나 이번에 나올 '사랑 인문학' 책을 써낸 것에 조금 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아가 뉴스레터 등을 통해서 다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데서도 일말의 보람을 느낀다. 내 이야기로만 가득 채운 뉴스레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숨쉬는 이야기가 담긴 뉴스레터가 훨씬 더 가치있다고 생각된다.
새해에는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 내가 담당하는 코너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사실 나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인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에세이로 담아내는 일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매달 한 번씩 찾아가, 경청하고, 글로 담아낼 것이다. 이 또한 나에게는 중요한 실험이자 의미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나의 이야기만으로 가득 찬 가시나무가 아니라, 많은 이야기들이 통과할 수 있는 통로 같은 것이 되어가고자 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