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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an 27. 2023

실패로 점철되었던 지난 인생

Unsplash의JESHOOTS.COM


누군가의 기준에서 볼 때, 내 인생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을 졸업하여 들어갔던 대학원에서는 학위도 받지 않고, 수료만 하고 나왔다.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나한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위해 2년 간을 보낸 셈이었다. 그 이후에는, 서른이 넘어 취업 준비와 새로운 진로를 고민했는데, 로스쿨 입시에서도 한 번 떨어졌고, 그 기간 동안 취업에 실패한 회사가 수십 군데는 된다. 


그렇게 서른이 넘어서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방황하고 있다보니,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것도 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실, 아내는 종종 자신이 나를 구해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를 만나고, 로스쿨에 합격하고, 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120명의 재학생 중 나이 많기로는 열 손가락에 들었을 때였다. 앞으로 어찌될지도 모를 만학도와 결혼해주고, 믿어주고, 지지해준 아내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도 무엇을 하며 살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내는 나에 비해 인생이 훨씬 순탄하여,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내가 취업을 할 때쯤에는 이미 10년차 가까운 직장인이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아내의 팔자'로 나도 간신히 제 구실 하며 사는 남자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그다지 현실적으로 잘 풀렸다고 할 만한 게 딱히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글쓰기를 놓고 보더라도,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다소 관념적이고 어려운 인문학 책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내 글이 좀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고, 그 덕분에 나도 글쓰기의 기준을 크게 바꾸어나가게 되었다. 당시 내 생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쓰자.'였는데, 그렇게 기준을 바꾸어 오다 보니,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소재적인 면에서 놓고 보더라도, 나의 고준담론 보다는 아내와 아이랑 보내는 소소한 일상들을 쓰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게 되고, 나의 글쓰기가 알려진 계기가 되지 않았었나 싶다. 그것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아내와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공부에 몰두하던 시절, 내게 그토록 소중했던 존재들에 관해 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그 시절 자체를 나는 선물받은 셈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도 타인들의 시선이 두렵고, 온통 실패로만 가득한 인생 같아서, 남들 눈을 피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테면, 공모전에서 수십번 떨어지거나 취업에 수십번 실패한 건 내게 너무 자연스러웠던 기억이어서, 별로 실패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이다. 어떤 시절 내 인생의 모토는 거의 '자발적 고립'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늦게 온 만큼, 나 자신이나 내 삶에 관해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차근차근 나의 실패들을 이해하면서, 나는 내게 최선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 내가 믿고 의지하며 나를 믿어주고 내게 의지하는 그 누군가의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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