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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an 25. 2023

어른이 된다는 것

Unsplash의Jeremy Bishop

어른이 된다는 건 모순을 학습하는 일이다. 어린 아이들은 모순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를테면, 자신들의 친구인 돼지나 소, 물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에 기겁을 한다. 아이에게 '소'와 '소고기'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이다. 아이들은 친구를 먹는다는 이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래서 우리가 먹는 게 소라고 하면 울음을 터뜨린다. "다신 안 먹을거야."


그러나 나이가 들면, 대개 많은 것을 '원래 그런 거야.'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눈 앞에 살아있는 새끼 돼지는 귀엽지만, 어른은 얼마든지 그 돼지를 먹을 수 있다. 어른의 마음 속에서 두 마음은 모순된 채로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워하는 사람이랑도 함께 살 수 있고, 싫어하는 일도 해낼 수 있다. 사랑하는데 이별해야 한다는 모순도 인정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어른의 마음에는 '논리를 더 이상 작동시키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모순을 끌어안는 이 영역이야말로, 우리를 어른이 되게 한다. 모순을 견디지 못하면,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생의 모든 모순에 엉엉 울다가 도망치거나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어른은 모순을 끌어안고 인생을 견뎌낸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본인의 모순은 견디면서 살아가면서, 타인의 모순은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순수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순적인 태도를 드러내면 쉽게 비난하기도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의 모순에 치를 떨기도 하고, 친구의 모순에 건수 잡듯이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모순은 인간의 운명과 같아서, 우리가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지구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에어컨을 즐길 수 있고, 사회의 빈부격차를 고민하면서도 명품백을 살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모순'이라고 몰아세우거나, 스스로 저주하기 시작하면, 인생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원래 모순 덩어리여야만 인생을 견딜 수 있다. 


물론,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모순에 우리가 너무 당당하다면 곤란할 것이다. 특히, 타인에게 폭력이 되는 모순에는 주의 깊은 태도가 필요하다. 남들한테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비난하고는, 정작 자신은 악마같이 사는 것만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태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모순을 제거하려는 것은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모순을 경계하되, 모순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단지 모순이 폭력이 되지 않는 선을 이해하면서, 모순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가끔은 그 모순을 견딜 수 없어서, 어느 날 밤 내가 짓밟은 세상의 모든 벌레와 내가 먹은 모든 생명과 내가 떠나보낸 모든 사람을 애도하며 엉엉 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우리는 다시 그것들을 끌어안고 또 살아가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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