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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3. 2023

변호사 일과 기자 일의 닮은 점

Unsplash의Hunters Race


변호사 일을 하면서는, 여러모로 기자와 가장 닮은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단, 변호사는 타인에게 온갖 사실을 꼼꼼하게 캐묻는 일을 잘해야 한다. 소송에서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서 파악해놓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취재하듯이 전후사정과 세부 맥락 등을 다 파악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기자와 변호사가 사석에서 만나면 서로에 대해서 아주 알차게 다 캐묻는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아마 한 시간쯤 서로 대화하고 나면, A4 몇 장 정도로 서로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정보가 쌓일 법하다. 기자는 그렇게 캐낸 것으로 기사를 쓸테고, 변호사는 그렇게 캐낸 정보로 서면을 쓸 것이다. 


실제로 소송을 하면서, 서면을 주고 받다 보면 온갖 이야기들이 다 튀어나오게 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기사처럼 공개할 수도 없는 온갖 이야기들을 서로 폭로한다. 이런 게 정점에 달하는 게 이혼소송 같은 것인데, 거의 서로의 모든 사생활들에 대한 폭로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변호사도 기자처럼 세상 곳곳의 온갖 영역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변호사가 아니라면, 스마트폰 부품 제조 및 유통 구조나 업체간 갑을관계라든지, 코인이나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IP 문제, 다단계 사기의 내부 구조와 계좌 흐름 같은 것을 관련 업계 사람이 아닌 한 평생 들어볼 일이나 있을까? 그러나 변호사는 온 세상의 온갖 일에 개입하는 법을 다루어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사실, 나는 서른 무렵 기자나 변호사 둘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이십대 내내 인문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면서 학문의 탑 속에 있는 동안, 왠지 이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과는 유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는 관념의 세계에서 벗어나 바로 현실로 뛰어들어 그 현실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상 변호사가 되어 보니, 정말 현실 그 자체가 따로 없다. 


내가 평생 경찰서에 가본 건 집앞에 불나서 진술하러 간 적 딱 한 번이었는데, 변호사가 되니 구치소나 경찰서 정도는 동네 슈퍼마켓처럼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나는 숫자 계산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변호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꼼꼼하게 주고 받은 돈 액수를 1원 단원까지 계산하여 따지는 것이다. 차마 인문학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세부적인 현실의 폭력들이 눈앞에 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짜맞추고 대응하고 파헤치고 싸워야 하는 게 변호사의 일인 것이다. 


사실, 작가로만 살 때는 타인에 대해 '꼼꼼하게 따지는 것' 자체가 다소 꺼려지는 면이 있었다. 하다못해 임대차 계약 같은 것을 할 때도 계약 조항보다는 집주인 '기분'이 더 중요한 것처럼 눈치보곤 했다. 그런데 이 현실 세계에 들어와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지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되어가기도 한다. 조선시대로 치면 선비처럼 에헴 하고 돌려 말하고 그러려니 하기 보다는, 상인처럼 주판 두들기며 계산하고 따지는 쪽이 더 익숙해져야 하는, 그런 직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자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고 말이다. 


그런 직업적 삶이 나의 글쓰기나 삶에 대한 태도, 감성 같은 것까지 어떻게 바꾸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그 이전까지는 살아가는 게 다소 안개 같고 모호한 시야 속에서 이어진 일 같았다면, 조금 더 투명해지는 것 같은 느낌은 든다는 점이다. 이 세상살이, 이 인생살이에 보다 명확한 시야로 대응할 줄 알게 된다는 건, 어떤 자신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때론 이 투명함이 칼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땐, 마치 이십대로 돌아간 것처럼 글을 쓰며 삶을 다시 붙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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