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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22. 2023

삶을 사랑할수록, 슬픔을 끌어안아야 한다

Unsplash의Paola Chaaya


아이는 언젠가 엄마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한다는 날이 온다는 이야기에, 매번 울상이 된다. 자신은 나이가 들어도 엄마 아빠랑 결혼 할 것이고, 같이 살 거라고 한다. 언젠까지, 같이 살자고 한다. 그리고 종종 사람은 모두 정말로 늙고 죽는 것인지를 확인하듯 묻는데, 우리는 그렇긴 하지만, 하늘 나라에서 만날 거라고 알려준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아마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겠지만, 나는 그 진심도 달라질 것이라는 걸 알아서 조금 슬픈 마음이 된다. 머지않아 아이는 엄마 아빠 보다는 친구를 더 좋아하거나, 함께 살고 싶은 연인을 만날 것이다. 독립을 원할테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길 바랄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지금 여기의 당신을 그토록 사랑해야 하는 운명이란, 역시 슬픈 일이긴 하다. 


이를테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한부인 여자 친구를 만나러 과거로 떠나, 애인 앞에서 모른 척 사랑하는 영화와 꼭 닮은 것 아닐까? 내 앞에는 마치 시한부와 같은 아이라는 존재, 우리 셋이라는 이 가족의 형태가 있다.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달라지고 낯설어질 형태의 사랑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놀아달라고 조르면, 때론 너무 피곤해도 애써 몸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가 나한테 놀자고 조를 날은, 이제 아이를 키운 햇수 만큼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일은 뭐랄까, 삶의 일시성을 너무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버리는 일 같다. 혼자나 둘이라면 보다 천천히 흐르는 세월 속에 살 것만 같은데, 이 무섭게 자라는 아이가 추가되면, 인생이 얼마나 빠른지를 실감나게 체험해버린다. 인생이 최소 네 배속에서 여덟 배속으로 가는 듯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아이를 봐도 마찬가지다. 그저 혼자나 둘이서 사는 사람은 10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랑 사는 사람은, 그 아이의 크는 속도 때문에 그 사람의 시간도 빨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이 어딘가 유토피아를 향해가고, 그 유토피아에 이르고 나면 지고의 행복이 있을 것 같은, 그런 대단한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성공지향적인 마인드로 가득 찰 때이다. 그러나 실은 이 시절이 전부이고, 이 시절이 끝나고 나면 그냥 다음 시절이 있을 뿐이라는 걸 또 절실히 깨달을 때가 있다. 진실은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 다음에 무엇이 있겠는가? 바쁘게 살아가며 부지런히 사랑하며 이 시절을 보낸 다음에, 무슨 유토피아가 있을까? 그냥 다른 시절이 있을 뿐이고, 그 시절에는, 이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사랑하려 애쓰고 있을 따름일 것이다. 


지금껏 인류의 역사 속에 있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도,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아이의 눈동자를 사랑했고, 그런데 그 아이도 늙어서 세상을 떠났고, 모든 사람들이 젊은 날에 목숨을 내놓을 것처럼 그 누군가를 사랑했으나, 그들 또한 모두 이 세상을 두고 사라져갔다는 그 당연한 진리가 믿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사랑한 작가들도 다 죽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할지 매번 묻게 된다. 


오늘은 아이랑 늦은 오후, 아무도 없는 공원에 나가서 한 시간쯤 뛰어 놀았다. 미끄럼틀에 장난감 트럭을 내려보내면서 깔깔대고, 숨바꼭질을 하고, 둘이서 서커스 놀이 같은 걸 하고서는, 아이 손에 만 원짜리를 들려주고 직접 아이스크림과 사탕도 사게 해주고, 둘이서 손잡고 한참을 떠들며 돌아왔다. 이런 날들이, 마치 더 이상 아무도 보지 않을 어느 다락방 속 비디오 테이프 속 일이 될 날이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아서 슬픈 마음이 이어졌다. 삶은 슬프지 않은 것일 수는 없다. 삶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 슬픔을 더 깊이 끌어 안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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