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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8. 2023

인간은 특별한 존재일까


예전에는 인간이 아주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는데, 요즘엔 다른 동물들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청년 시절에만 해도, 나는 인간이란 아주 특별한 존재여서, 그런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아야 된다고 믿었다. 인간만의 창조성, 상상력, 결단력, 이성 같은 것이 있어서, 동물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숭고함을 지닌다고 믿었다. 그것이 내 삶의 길이나 이유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오히려 인간이 너무나 동물 같아서, 삶의 숭고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동물들의 분투나 의례 같은 것은 인간과 너무도 닮았다. 새가 이성에게 구애하고자 춤을 추고, 치장하고, 멋진 노래를 부르듯 인간도 그렇게 한다. 코끼리들은 잠시만 서로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나면 반갑다고 요란한 인사를 해대는데,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인간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동물들이 사람 못지 않게 새끼를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돌본다. 


오히려 인간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순간은, 덜 동물다울 때인 것 같기도 하다.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내거나, 현재를 사랑할 줄 모르고 온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과욕을 품을 때, 동물에게는 없는 과대망상과 괴물같은 권력욕에 사로잡힐 때, 추잡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어떤 동물도 평생 써도 못 쓸 물질을 모으고, 또 모으는 데 골몰하며, 다른 동료 동물들을 잔인하게 착취하는 자폐적인 탐욕에 빠지지 않는다. 동물들의 세계에는 정도와 의례가 있고, 균형이 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내가 그저 한 마리의 동물일 뿐이라는 걸 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랑 헐벗고 깔깔대고, 땅 파고, 수풀 사이를 헤집고, 춤추고, 뛰어놀고, 맛있는 걸 집어 먹고, 나눠 먹고, 햇빛 아래에서 종일을 보내는 동안, 내가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더 다가간 느낌을 받곤 한다. 서로 추상적인 기준을 놓고 비교하고, 그 기준에 닿지 못해 시기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며, 현재를 내다버린 채 더 큰 성공만을 이야기하는 건 일종의 내 존재와 역행하며 미쳐가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사랑하려고 태어난 것이다. 


내가 요즘 너무 사랑해서 아껴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인간들만 하는 줄 알았던 각종 의례들이 실은 모든 동물들의 것이라는 게 너무 다정하게 전해진다. 동물들도 서로 인사하고, 구애하고, 선물하며, 노래부르고, 소리로 서로에게 중요한 일들을 알려주며, 표정과 몸짓을 짓고, 놀이를 하고, 애도하기도 하며, 여행도 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인간 삶에서도 잊어선 안되는, 삶의 핵심 같은 것들이다. 숫자로 서로 비교하는 데 정신 팔린 채 살아가기나 하는 건 생명 본연의 일에서 심하게 탈선해서, 오히려 무생물 쪽으로 가는 어떤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조금 더 인간의 감정에 밀착해서, 인간의 마음으로,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간의 감각적 향연 속에서, 인간의 균형과 의젓함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모범처럼 배우게 되는 건 인간만 가진 어떤 특질로부터가 아니라, 생명 보편의 특질에서부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약간의 희망 하나는, 살아가면서 내 삶이 조금씩 더 그런 땅과 가까운 삶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노을을 향해 걷는 코끼리 떼나 둥지를 틀고 깊은 잠을 자는 어느 밤의 새 가족, 초원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며 뒹구는 새끼 사자를 닮아보는 일이다.


Unsplash의Nam A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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