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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23. 2023

아이는 죽기 싫다고 울었다


며칠 전,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제 자자고 누웠는데, 아이가 갑자기 혼자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죽기 싫어."라면서 울먹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안 죽어, 걱정하지 마."라고 했는데, 아이는 "꼬부랑 할아버지 되면 죽잖아."라고 했다. 나는 다시,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안 죽게 해줄거야."라고 했더니, 아이는 다시 "의사 선생님도 꼬부랑 할아버지 될 거잖아."라고 말했다. 


아이가 계속 훌쩍거리길래, 나는 "왜 안 죽고 싶어?"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죽으면, 그동안 세상이 너무 그립잖아."하고 말했다. 아이는 죽음을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예전에도 아이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엄마 아빠랑 놀지도 못하고, 웃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게 싫다고 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쯤 지난 지금, 아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건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제 4년 남짓 살아낸 아이도 그런 걸 보면, 아마 세상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세상과의 이별을 가장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 떨어졌고,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고, 그래서 늘 이 세상을 꿈꾸고 있고, 이 세상을 누리길 바라며, 언제까지고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이 사랑을 무언가 막거나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김민섭 작가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바닷가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아이가 바다를 닮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바다에 가면, 그저 바다가 아이를 키워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도 와 닿았는데, 바다가, 이 세상이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너무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도 아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키워주고, 세상과 사랑을 나누고, 카뮈의 말마따나 세상과 결혼하는 시간을 살길 바란다. 


좋은 삶이란, 그렇게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여서 세상과의 작별이 아쉬운 삶이 아닐까 싶다. 내가 소유한 것, 내가 이룬 것, 내가 더 갖고 싶은 것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저 이 세상이 아쉬운 마음을 유지하고 지켜내는 것, 그것이 아마도 삶의 핵심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회사 점심 시간에 첫 벚꽃을 봤는데, 신나서 동료들이랑 사진도 찍었다. 주말에는 아이와 올해 첫 모래놀이를 했다. 죽는 게 아쉬운 건, 그런 것들 때문이다. 


아이와의 이야기는 그 뒤로 약간 당혹스럽게 흘러갔다. 내가 젊은 의사 선생님도 있을 거라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나를 로봇으로 만들면 어떡해."라면서 엉엉 울었다. "괜찮아, 로봇도 멋지잖아."라고 했지만, "동물들이 로봇을 다 부숴버리면 어떡해."라면서 계속 울먹거렸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는 이어지다가, 결국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도, 의사선생님도 있어서 다 고쳐주고 괜찮을 거라고 마무리 되었다. 아내한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아내는 아이에게 삶의 슬픔 보다 기쁨을 가르쳐주자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를 닮아서 슬픔을 너무 잘 아는 것 같다고, 즐거움을 알려주자고 했다. 


"맞아, 아직 슬픔에 너무 몰두할 필요는 없지." 나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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