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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01. 2021

세상을 바꾸고 싶던 청소년 시절과 그 이후


청소년 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세상이 그만큼 만만해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세상이라고는, 매번 오가던 학교와, 여동생과 부모님이 있던 작은 집과, 한 지방의 구석진 동네 뿐이었고, 그밖의 세상이란 그저 구체성이라고는 없는 막연한 덩어리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 막연한 덩어리를 바꾸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어느 친구들과 세상의 뒤엎자고, 바꾸자고, 세계 제일의 무언가가 되자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소리칠 수 있었다.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 그 마음이라는 것도 점점 희미해지고, 왜 그런 걸 원하기나 했는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때라는 것도 오는 듯하다. 세상이라는 걸 바꾸어서는 무엇 할 것이며, 혁명을 일으키고, 세계를 뒤집어 엎고, 제일의 무언가가 된다고 한들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어른'이 되는 때도 오는 것 같다. 그래도 스무살 무렵에는 체 게바라가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서른이 넘고 마흔이 다가오면, 그 '멋짐'에 대한 감정조차 흐려지기도 하지 않나 싶다. 


사실, 그 이유는 그만큼 세상을 잘 알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바뀌지도 않는 것이며, 그보다 나 하나, 내 곁의 한 사람, 내 주변의 작은 세계를 바꾸는 것조차 무척 어렵다는 걸 알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을 바꾼다 한들 별반 달라질 건 없고, 어차피 인류사라는 것이 무익한 반복처럼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세계 제일의 무엇이 된다고 해도, 얻는만큼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고, 인생이란 트레이드 오프이고, 이래나 저래나 나름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겸손 비슷한 것을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말들이 모두 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딘지 자기만의 꿈을 품고, 간직하고, 잃지 않고서 지켜내고, 이루어내고, 세상의 근사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여전히 가슴 뛰는 구석도 있다. 어차피 세상 속에서의 성공이나 역사적인 이름 같은 것은 그 자체가 아주 대단한 건 아니라고 여러모로 느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이 자기의 내면 안에서 지켜내는 어떤 세계, 상상력, 의지, 인내, 끈질김, 결국 구체적 형상으로 삶에 실현시켜내고야 마는 내면의 희망 같은 것에는 아직도 종종 숭고함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해내고야 마는구나, 삶의 낭만이라는 것을 건져내고야 마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삶이라는 것은 작은 인연들을 엮어가고, 작은 행복들을 지켜나가고, 작은 시간들을 간직하면서 피워내는 보물지도 같은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또 과연 인생이 그것만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삶이란 거대한 낭만이라는 톱니바퀴로 굴러간다고 믿었던 게 청년 시절의 이야기이고, 반대로, 삶이란 무수히 작은 톱니바퀴들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게 청년 이후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중 어느 하나만이 진실이고, 다른 하나가 거짓이라기 보다는, 삶이란 그 두 가지 진실 사이에서 계속 움직이는 추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종종 나는 청년 시절 나의 꿈이나 마음을 폄하한다. 오늘 알게 된 가치들의 소중함을 지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청년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폄하하기 위해 바빴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양쪽 다 삶의 중요한 부분에 발디디고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멋짐이란, 솟아오른 탑의 꼭대게 한 곳에만 있는 곳은 아닐테니 말이다. 살고 싶은 것이 진정으로 멋지거나 아름다운 삶, 혹은 진실한 기쁨을 아는 삶이라면, 종종 첨탑의 꼭대기에서 한 번씩 내려와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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