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Feb 01. 2021

꿈과 사랑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


멋진 삶이란, 꿈과 사랑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로만 돌아간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을 좇는 여정길이 인생의 한편에 펼쳐져 있다면, 그와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삶의 모든 마음을 내어주고, 그렇게 꿈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낭만 속에서만 인생이 굴러간다고 믿던 게 청년시절의 인생관이라면 인생관이었을 것이다. 그 거대한 두 개의 톱니바퀴 외에 다른 것들은 인생에서 모두 부차적인 것이므로, 아무래도 좋다고 믿었던 시절이라는 게 있었다. 


명징한 눈빛과 마음으로 오직 자신의 꿈을 좇을 것. 그밖의 세상이 이야기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 것들로 치워버릴 것. 인생길에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줄기가 있고, 그 줄기만을 명료하게 좇는 것이 가장 멋진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므로, 단단한 마음으로 그 길을 따라나설 것. 보물지도 위를 걸어가는 연금술사나, 우주의 별을 쫓는 점성술사처럼 사람은 태어나 자신의 꿈을 가장 중시하며, 그 꿈을 향한 길 위에 삶을 올려놓을 것. 그것이 곧 삶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 여정길에는 마치 꿈에 온 마음을 집중시키듯이 자신을 바쳐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또한 사랑이라 믿었다. 그렇게 삶이란 아주 단순한 두 가지로 완성되는 것이고, 그 두 가지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덜 중요하고, 없어도 그만이고,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차단하거나 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믿기도 했다. 이 우주에 단 두 가지만을 남겨두면 된다면, 삶이란 얼마나 명료한가 말이다. 우주에 단 두 개의 별만을 남겨두고, 삶을 꿈 속에 갈아넣고, 그 곁에 있는 다른 별인 사랑에만 모든 걸 바치면 그렇게 삶은 그 핵심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고만 믿던, 이른바 '낭만주의 시대'의 청년시절이라는 게 있기 마련일지도 모른다. 


그런 청년 시절에서 벗어나면서, 다소 낯설게 인식하기 시작했던 게 세상의 자질구레함들이었다. 가령, 그 이전까지는 한 번도 가치있다고 믿은 적 없었던, 약간 값비싼 옷들, 다소 근사하다고 말해지는 값비싼 장소들 같은 것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누리게 되는 때가 있었다. 혹은 내 꿈과 관련없는 사람들, 그저 사람들, 그저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서로의 인정에 기대어 삶의 가벼운 순간들을 이어가게 해주는 이웃들, 그런 인연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엮여 있고, 내가 잊어선 안되는 가족들이나 삶에서 사소하게 챙겨야만 하는 무수한 의무들과 책임들도 알아가게 되었다. 삶이란, 사실 거대한 두 개의 일등성만 빛나면 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보다 더 다양하고 잔잔하고 많은 별들을 엮어가는 일이라는 걸 차차 알아갔다. 


그런 청년 시절의 이야기라는 것도, 어언 일이십년 전의 이야기들이 되었고, 어느덧 내 삶이 들어서는 영역에서는 그런 거대한 러브스토리나 드리머의 여정보다도 오히려 하루하루 빛나는 작은 별들에 대해 더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국경을 넘고 나라의 운명을 뒤흔드는 장엄한 러브스토리나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 인생을 걸고 모험하는 꿈을 향한 이야기보다도, 나와 인연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속의 나날들과, 작고 소중한 순간들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깔깔댐과, 한번도 꿈꾸었던 적 없던 웃음들에 대해 알고 새겨두어야 한다고 느끼곤 한다. 


인생이란 거대한 여정이지만, 동시에 작은 물줄기들이 무수히 세분하여 매번 새로운 땅으로 뻗어나가는, 그런 지류들 같은 하루하루들이 오히려 핵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릴 적 꾸었던 대단한 꿈 같은 건 다소 아무래도 좋을지 모르고, 인생을 걸 만한 러브스토리를 꼭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오늘 화병에는 어떤 꽃을 꽂았는지, 오늘 오후에는 어떤 요리를 했는지, 오늘 저녁에는 어떤 웃음을 가졌는지, 오늘 새벽에는 어떤 눈물을 자아냈는지, 그렇게 하루하루 어떤 마음들이 자질구레하게 얽히고설켜 아무런 거대한 그림도 그려내지 못하는, 그저 잔잔하게 흩어 사라진 하루들이 있었는지, 그 하루들이 어떠했는지, 그것이 더 삶다운 삶 쪽에 위치해 있는 어떤 표지들일런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바꾸고 싶던 청소년 시절과 그 이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