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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06. 2023

30대에 배운 가장 명확한 진실

Unsplash의Drew Patrick Miller


지금 다니는 직장은 내가 처음으로 얻은 정규직 직장이다. 만 1년 정도 다니고 나니, 이런 직장이 생긴 것에서 여러모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당장 예측 가능한 수입이 들어오므로 재정적인 계획이 가능해진다. 또 삶에 대한 초조함이 덜어지니까, 몸이나 건강도 챙겨보게 된다. 학생 시절이나 프리랜서 시절에는 무리해서라도 들어오는 일을 다 하고 다소 돌발적으로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어느 정도 쥐게 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언젠가 한 프리랜서 작가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나에게 자신은 곧 죽어도 직장 생활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나선다는 게 대단하다면서 말이다. 나도 사실 스무살 이후 10년 이상을 그렇게 살았어서, 그 심정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막상 해보면 못할 게 없다. 그냥 적응하면 된다. 그러면 몸도, 뇌도 그에 따라 바뀐다. 


최근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라는 뇌과학서를 읽고 있는데, 책에 나오는 뇌의 기상천외한 유동성이 깜짝 놀랄 지경이다. 뇌는 끊임없이 변하면서 우리를 세계에 적응시킨다.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도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뇌가 뇌에서 '시각 부위'를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한동안만 눈을 감고 있어도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약해지면서 청각 등 다른 감각에 대한 부분으로 조금씩 대체되고 잠식당한다는 것이다. 계속 쓰는 감각이나 능력은 뇌에서 그만큼 빨리 영역을 확장하여 갖게 된다. 안 쓰면, 또 금방 다른 감각이나 능력에 잠식당한다. 


그래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뇌를 믿는다'는 것으로 바꾸어도 말이 되지 않나 싶다. 나의 뇌는 문어처럼 변신의 귀재이고 유연하므로, 나를 어디 던져놔도 결국 내 뇌가 적응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믿어도 좋은 것이다. 정시에 출퇴근하고 헬스장가서 운동하면 죽는 줄 알았던 나도, 어쨌든 적응하니까 하게 된다는 걸 느낀다. 물론, 조금 더 나라는 인간의 조건에 맞게 직장을 바꾼다거나 헬스하는 시간을 바꾸는 식으로 약간은 스스로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당장 적응할 때까지의 의지 발휘가 안되면, PT를 하는 식으로 약간 돈을 써서 의지력을 구매할 수도 있다. 


내가 30대에 배운 가장 명확한 진실이 있다면, 바로 이것 "적응하면 된다."라는 것이다. 법 공부도 처음에는 120명 중에 거의 100등을 할 정도로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5등을 할 정도까지 적응이 된다는 걸 경험했다. 내 주변에는 조카도 하나 없어서 아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어느덧 부모라는 역할에 무척 익숙해졌다. 글쓰기 모임도 시작한 건 서른부터였는데, 지금은 누구와도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송무도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제는 경찰서나 법원에 가고 글과 법리로 싸우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간의 뇌가 유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십대 때 소설 쓰는 걸 좋아했지만, 막상 스무살이 되어 내 이야기를 일기로 써보려고 하니 한 문단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일기장을 보면 '문단'을 제대로 쓸 줄 몰라, 파편적인 문장들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장 편안하고 익숙하게 하는 일이 글쓰기이다. 한 문단이 아니라,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모르면 몰라도, 내 뇌에서는 글쓰기와 관련된 부위가 점점 커져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계속 써서 뇌가 그에 맞게 바뀐 것이다. 


매년 나는 조금씩 새로운 일들을 해보려 하고 있다. 올해는 운동을 시작했는데, 거의 뇌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격렬하게 저항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꽤나 받아들인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소중한 밤 시간을 써서 헬스장에 간다는 건 거의 자기 고문이나 학대에 가까운 일이라, 시간대랑 방식은 바꾸기로 했다. 아무튼 주 1회 하던 운동은 주 2회로 늘릴 것이고, 하반기 쯤에는 주 3회가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다. 뇌와 신체가 그렇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자리 잡아가는 삶 속에서도, 또 약간씩 새로운 것으로 계속 나를 적응시키고, 그러다 어느 때에는 삶을 크게 바꾸게 될 날이 올 수 있지만, 어떤 삶을 살든 '뇌'를 믿어보면 어떨까 싶다. 지레 겁을 먹기 보다는, 문어의 변신 능력 같은 뇌의 적응 능력을 믿고 새로운 방식의 삶도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은 삶에 대한 믿음이자 인간에 대한 믿음, 그리고 뇌에 대한 믿음에서 와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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