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Apr 10. 2023

나태한 게 아니라 불안한 것

요즘 시대의 화두 중 하나가 '나태함'이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태함과 불안을 착각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나태함을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좋은 습관과 루틴을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 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무기력한 나날들을 적지 않게 보냈고, 체형이나 마음 건강, 경력까지 무너진 게 한 몫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마주해야 할 건 '게으른 나'가 아니라 '불안한 나'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최근까지도 갖가지 불안에 시달려 왔다. 내가 비로소 불안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게 된 건 가정이 생기고, 정규직 직장이 생기면서였다. 그전까지 내가 운동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게을러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불안해서, 운동 같은 걸 할 마음을 먹지 못했다. 


매일 정기적으로 운동할 시간에, 더 지식을 쌓거나, 책이라도 한 권 더 쓰고, 무언가 불안한 조건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그 '강박'을 떨쳐내기 쉽지 않았다. 그 불안을 잊기 위해서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강하게 나의 의지와 에너지와 시간을 써서 무언가 장기적으로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청춘 내내 따라다닌 불안이 나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8대 죄악이라는 나태함에 지배당한 자신을 책망하고, 때론 게으른 타인들을 무시하고 조롱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몸이든 마음이든 인생에서든 건강한 무언가를 착실하게 쌓아올리지 못하는 건, 뼛 속 깊이 스며든 불안 때문일 수 있다. 그 불안 때문에 차마 제대로 된 무엇을 하지 못하고, 불안을 잊기 좋은 현실 도피식 유튜브에 빠지거나 릴스, 커뮤니티 같은 것에 손쉽게 빠질 수 있다. 여기에 외로움까지 겹치면,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어떤 내부적 불안의 노예 같은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나는 그나마 그 불안을 이겨내는 방안으로 청년 시절 책과 글쓰기를 택했던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책은 간접적으로나마 현실과 만나게 하고, 글쓰기는 대체 불가능한 시간을 써서 그 나름의 능력이랄 것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 쌓은 기반에 빚진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의 독해 능력, 그때의 글쓰기 능력으로 사실상 먹고 살고 있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약간은 인생의 안정기로 접어들어, 이제서야 몸과 건강도 챙겨보면서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마주할 줄 알게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만약 나태한 자기 자신을 너무도 극복하고 싶은데, 그것이 도무지 안된다면, 자책은 그만두고 불안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마주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매일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단순히 허비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점검하고 내가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들을 하나씩 쌓아갈 필요가 있다. 핵심은 언제나 내가 '그냥 나태'한 게 아니라, 뼛 속 깊은 불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태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불안과 싸우는 하나의 비결이 있다면, 나는 어쨌든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돕고 고민하는 취업 스터디가 불안과 싸우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고민하며 불안에 떨다가, 매일 유튜브나 보고 자책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법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어느 시절의 불안과 싸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대학교나 대학원 동료들, 독서 모임 사람들, 함께 운동하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불안의 상당 부분이 완화되고, 내가 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사이비 종교나 사기 행각들이 이런 타인의 '불안'을 이용한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내가 스스로의 불안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너무 쉽게 세상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유혹이나 모든 불안을 해소해줄 것 같은 사이비 종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불안을 먼저 마주할 필요가 있다. 나의 불안을 받아들이고, 그 불안을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지를, 이제부터 한 걸음씩 고민해 나가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30대에 배운 가장 명확한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