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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12. 2023

인생을 결정하는 건 축적과 정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두 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하나는 '장기적인 전망으로 단기적인 불편들을 감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욕망 때문에 단기적인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 손쉬한 쾌락과 편안함만을 끊임없이 택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우리는 너무 큰 것들을 잃는다. 단순하게는, 매일의 과소비가 결국 우리 재정 상태를 파산으로 내모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 콜라 마시고,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술과 도박에 빠져 살다 보면, 우리는 장기적인 인생이랄 것을 전혀 구축할 수 없게 된다. 오늘의 편안함과 쾌락을 택했다는 이유로 몸은 급속도로 망가지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경제적 기반, 능력, 경력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장기적인 욕망에만 너무 매달리다 보면 다른 의미에서 삶을 잃게 된다. 큰 성공, 큰 돈, 큰 성취 같은 것만을 향해 내달려 가다 보면, 사실상 우리는 삶을 오늘에서 온전히 누리는 법을 잊게 된다. 그럴 때는 오히려 스스로 몰아세우는 것을 그만두고, 일부러라도 '편안해지는' 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편안하게 아침을 응시하고, 산책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고요히 보내는 저녁의 가치를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을 본다는 건 '축적의 세계관'을 지니는 것이다. 매일 쌓아나가는 건강, 지식, 일에서의 실력, 촘촘히 쌓아가는 재산 등으로 삶을 건설해가는 것이다. 또한 단기적인 관점에서 오늘을 사랑한다는 건 '정지의 세계관'을 지니는 것이다. 먼 미래 보다는 오늘 여기에 행복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여기에 정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삶은 이 축적과 정지의 세계관이 지배할 때, 온전한 길을 향해가는 듯하다.


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패하는 건 '소모의 세계관'을 지니는 것이다. 시간과 몸과 정신을 버리고 소비하고 소모하면서 잃어가는 것이다. 또한 단기적인 관점에서 실패하는 건 '강박의 세계관'을 지니는 것이다. 강박적으로 그 무언가를 좇느라 오늘에 정지하지 못하고, 삶이 있는 지금 여기의 기쁨을 잃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기적으로는 삶을 축적해가면서도, 오늘에서는 정지하며 삶을 응시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이 두 가지의 태도를 얼마나 잘 지니느냐가 삶의 관건이다. 그런데 이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관점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면, 한 마디로 '깨어 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으로 장기적인 전망에 계속 깨어 있으면서도 오늘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계속 깨어 있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반대로, 이런 의식에서 '잠들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을 계속 소모하거나 무언가를 좇기만 하는 강박 기계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결국 삶에서 관건은 계속 '잠든 의식' 속에서 기계가 되어가는 과정으로부터 떠올라 의식적인 '깨어 있음'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기계의 영역은 생물학의 영역이고 본능의 영역이기도 하다. 반면, 깨어 있는 의식의 영역은 투명하고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하는 철학의 영역 같은 것이다. 글쓰기든, 운동이든, 독서든, 산책이든,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해내고 유지하는 것은 이 깨어 있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철학이든 종교든 그토록 깨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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