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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13. 2023

수험생활로 망가진 몸, 그 이후

Unsplash의Aaron Burden


수험생활 동안, 나는 망가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공부, 더군다나 경쟁적이고 암기 위주의 공부라는 것은 나 자신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감성이 메마르거나,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일종의 공부 기계가 되어버려서, 나의 상당한 부분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나마 이십대 동안 쌓아왔다고 믿었던 비판의식이나 감성이랄지 하는 것들이 산산이 부서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나는 거의 매일같이 강박적으로 글을 썼다.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글을 많이 썼던 시기가 수험생활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동시에 글쓰기에 대한 생산력이 가히 폭발적이어서, 하루 30분 정도씩만 글을 쓰더라도, 매일 3-4천자씩은 나왔던 것 같다. 그 시절은 내게 신혼이자 육아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기록부터, 온갖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에 대한 고민, 사회에 대한 생각 등을 닥치는대로 적어냈다. 


그 덕분인지, 이십대에 내가 갖고 있던, 적어도 몇 권의 책(청춘인문학, 분노사회,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 등)을 썼을 정도의 그 마음의 기반이랄 것을 잃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다 지킬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대신 나는 몸의 균형이랄 것은 확실히 잃었다. 


20대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던 콜라를 절제 없이 마셔대기도 했고, 젤리를 너무 많이 먹어서 위가 자주 쓰리기도 했다. 당분을 잔뜩 섞은 커피를 매일같이 마셔댔고, 밤을 새다시피 하는 게 흔해서 수면 습관도 무너졌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이 다 빠지면서 저체중이 되었다가 다시 지방만 늘어난 정상체중(일종의 마른 비만)이 되었다. 거북목에 굽은 등도 심해졌다. 3년째에는 누워서 공부하는 시간도 많았다. 어깨랑 목 통증이 너무 심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 익숙해지다 보니, 수험생활이 끝나고 나서도 일종의 만성 피로나 통증 같은 것들이 내게는 당연한 운명이라고 믿어 버리게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은 뭔가 내가 그렇게 타고난 기질 같은 것이어서, 나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어느덧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어깨 통증만 하더라도, 도수치료까지 받아봤는데 받을 때만 잠깐 괜찮고 금방 다시 아파지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올해 초에, 사실 아내한테 끌려가서 PT를 등록하고, 승모근을 최대한 풀어주면서 등근육이나 다른 부위를 강화하는 운동을 하면서, 또 조금씩 체력을 기르다보니, 무언가 달라지는 게 조금은 느껴졌다. 그래서 관련된 책도 좀 읽어보면서, 내가 겪은 그런 만성 피로나 통증 같은 것들이 잘못된 식습관이나 근력 부족에 의한 현대인의 전형적인 증상이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이나 밀가루를 줄이고, 견과류나 단백질 섭취를 늘이면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여 '정상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요즘은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기간에 요행으로 해내는 일이 아니라, 일단 1년 정도 꾸준히 해낸 다음에는 평생 매일같이 다져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거의 매일 글을 썼듯, 앞으로 20년간은 매일 글쓰고 운동하고 식습관에 신경쓰면서 살아볼 생각을 했다. 핵심은 꾸준함이다. 무조건 꾸준함이다. 


인생을 그렇게 꾸준하게, 일종의 모범생처럼, 성실한 마음으로 차곡차곡 건강과 마음을 챙기며 살아간다는 게 청춘의 입장에서는 뭔가 재미없어 보이기 딱 좋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인생의 재미라는 건 근사한 승리, 대박, 짜릿한 역전승, 지름길과 요행, 돌발적인 천재성과 재능 같은 데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꾸준하게 쌓아가면서 얻는 느낌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다지고, 쌓고, 단단해지고, 성장하면서 얻는 확실한 기쁨이 있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목표는 이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전방위적으로 단단하게 지켜내면서, 그 속에서 안정적인 기쁨과 즐거움들을 야금야금 가져가는 것이다. 마약 같은 폭발적인 즐거움과 부서짐의 싸이클에서 빠져나와, 지평선을 향해 꼿꼿이 세운 몸과 강인한 정신으로, 일정한 속도와 리듬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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