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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09. 2023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feat.빨강머리앤)


삶에서 의미를 찾는 하나의 방식은 '나만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좇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일들은 있다. 특히, 타인을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을 좇고 또 좇다 보면, 우리는 나만의 삶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빨강 머리 앤>에서 마릴라는 처음에 앤을 입양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마릴라는 농사일을 도울 수 있는 남자 아이를 원했고, 고아원의 착오로 앤이 오자 다음 날 곧바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그 짧은 시간 동안 앤을 알게 되고, 그녀의 삶을 조금 연민하게 된다. 그 뒤에, 자신이 돌려보내려는 앤이 모질게 사람을 부려 먹는 지독한 부인에게 맡겨지려고 하자, 심하게 마음이 흔들린다. 


마릴라는 그 순간, 자신이 앤을 거두어주기만 한다면, 이 가엾은 아이가 다른 곳에 가서 모질게 부려먹어지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는 그것이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서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잘못' 온 아이지만, 자신이 지금 이 아이를 내치지만 않는다면, 이 아이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을 때, 우리는 그 일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사실, 사랑이란 대개 그렇게 이루어진다. 나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을 때 우리는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어간다. 실제로 그것이 착각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바로 그 '느낌'에 빠져든다. 대체 불가능한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랄 것도 비슷하다. 이 아이를 부모인 우리처럼 사랑해주고 잘 돌봐줄 사람이 세상에 달리 있을 수 없을 거라는 믿음 안에서, 부모는 부모가 되어간다. 


내가 살아오면서 그런 '느낌'을 깊이 받았던 건 글쓰기를 가르치면서였다. 세상에 나보다 훌륭한 작가도 많고, 더 글쓰기를 잘 가르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만이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착오 혹은 오인)이 나를 그 일에 붙들어맨다. 나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착각, 나만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오인이 곧 '나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요즘은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종종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의 수많은 변호사 중에서 내가 아니었더라도, 이 사람의 결백을 증명하거나 꼼꼼하게 쟁점과 법리를 찾아낼 변호사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나는 이런 항변과 이런 글쓰기는 나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그런 순간을 좇다 보면 확실히 나의 '변호사 일'로서의 보람이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좇는 게 내 삶의 의미를 만드는 듯하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더 있을까, 라는 고민은 삶의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의미라는 것에 더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이야기들도 그런 여정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그런 질문을 곁에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초점이 있다. 나는 삶의 의미에 초점을 두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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