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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23. 2023

무해한 행복자랑 (feat. 빨강머리앤)

빨강머리앤 애니메이션 캡쳐


빨강 머리 '앤'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는 '무해한 행복 자랑'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상시적인 자랑이 상대적 박탈감이 되는 시대, 대부분의 자랑들은 우리에게 '유해'하게 느껴진다. 화려하고 값비싼 전시 이미지들이 내 삶을 초라하게 느끼게 만들고, 타인의 행복이 나의 불행으로 느껴지는 시기심, 반대로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으로 느껴지는 일명 '샤덴프로이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시대에 앤이 펼쳐보이는 모든 '행복 자랑들'은 오히려 우리에게도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한다. 숲과 자연을 보며 끊임없이 감탄하고, 황홀해하고, 근사하다며 들떠서 소리치는 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소녀가 부러우면서도 미소를 짓게 한다. 앤이 근사하다고 하는 거의 모든 것이 현대 소비사회의 근사함과는 무관해서 너무 좋다. 


이 이야기에서 '자랑스러움'은 대단한 성공이나 승리와는 무관하다. 앤을 입양한 매튜와 마릴라가 앤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은 그저 앤이 발표회에서 낭독을 근사하게 했기 때문이다. 앤은 소년급제를 한 것도 아니고, 아역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며, 화려한 서포트라이트의 성취를 거두지도 않는다. 그저 부모를 잃은 한 소녀가 자연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상상력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힘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앤애게 멋진 것은 살아있음 그 자체다. "살아있다는 건 참 멋진 것 같아." 


앤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 "조세핀 할머니가 좋아해 주셔서 저도 기뻤어요. 우리 이야기 클럽이 뭔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단 거잖아요." 앤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상상하는 클럽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한 할머니에게 들려줬을 때, 할머니의 기쁨에서 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랄 것을 생생하게 느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고작 동네의 할머니 한 명이 즐거워했다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느낄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우리는 삶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우리 시대의 '전시 문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대부분이 '소비에 대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앤이 소비하는 것은 거의 없다. 앤은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한다. 자신의 상상력으로 숲, 호수, 들판, 언덕, 나무 등 세상 모든 것에 이야기를 덧씌운다. 앤이 하는 놀이 중에 돈을 쓰는 소비 행위는 없다. 모든 놀이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이야기 클럽을 만들고, 추억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앤을 읽는 시간이 좋다. 


현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나도 소비가 주는 즐거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다. 한편으로는, 소비의 즐거움이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니고, 대부분의 일에는 소비가 어느 정도 동반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확실히 '생산'의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랑 우리들만의 놀이를 만드는 일, 이야기를 만들고 책을 짓는 일, 모임을 만들고 시간을 창조하는 일, 획일적인 소비가 아니라 우리들만의 추억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만드는 일을 항상 그럴 순 없더라도, 정말이지 좋아하고 사랑한다. 


<빨강 머리 앤> 한 권이 이렇게 두껍고, 읽는 데 오래 걸릴지는 몰랐지만, 내게는 생애 처음 '앤을 읽는 시간'이 참으로 좋다. 자극적인 콘텐츠들에 길들여져 있다가, 이런 책을 집어들면 잠시 몰입이 안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씩 이 이야기에 젖어들다 보면, 마치 나도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잠시 살았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내 삶도 그 섬에서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닮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아침에 나서는 세상 앞에서, 너무나 근사하다면서,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라고 하는, 그 영혼을 조금이라도 더 닮았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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