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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09. 2023

한계 안에서 실험하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알 때, 비로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의 무한함을 만나게 되는 듯하다. 반면, 자신의 한계를 모르면 자신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한계를 아는 사람만이 무엇이든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고, 한계를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표류한다. 


가령,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100만 구독자를 모으고 엄청나게 유명해고 부유해지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인생의 여러 경험들과 몇 번의 유사한 시도들을 통해서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스타성이나 콘텐츠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나머지 남들이 하는 건 자기도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을 수 있다. 둘 중에 결국 더 제대로 자기의 일을 찾는 사람은 전자일 것이다. 


전자의 사람은 남들이 하는 방식들 중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방식들을 빠르게 '기각'시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그 일에 집중하다 보면 그 안에서 무한한 세부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꼭 남들이 해낸 방식, 어찌 보면 가장 주목받거나 그럴싸해 보이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기 삶을 설계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다른 방식의 콘텐츠, 작업, 생산, 마케팅 등을 찾아 자기만의 일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남들이 하는대로 나도 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기 한계를 모르는 사람은 매번 유행하거나 핫한 것들을 불나방처럼 쫓아 다니다가 정작 세월만 허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런 경우에는 무척 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나도 벼락부자가 될 수 있거나, 그 누군가처럼 쉽게 큰 돈을 벌고, 한방으로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온갖 사기, 투기, 도박 등에 너무 손쉽게 노출되고 유혹당할 수 있다. 


물론, 한 평생 살아가면서,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어떠한 모험도 하지 않으며, 지극히 안정만을 지향한다면 그것대로 삶이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일이 될 수 있다. 착실하게 저축하며 사는 사람이 어느 날 부동산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될 수도 있다고도 하는 시대다. 그렇기에 적절한 모험심과 실험정신은 필요하되,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모험과 실험이어야 한다. 한계를 모르고 달려가면, 어느 순간 '톰과 제리'의 톰처럼 절벽 바깥의 허공을 달리고 있을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시기는 청년 시절이 아닌가 싶다. 청년 시절이라는 건 10대에서 30대에 이르기까지 꽤 광범위할 수 있는데, 일단 그 이후의 시기보다는 비교적 책임이 적고, 나이듦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압박이 비교적 적은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절에 너무 쉽게 삶을 낭비하거나 허비하기 보다는, 자기의 한계를 알기 위한 실험들을 해보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쓸수록 좋은 것 같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한편 두려움도 끝이 없으므로, 욕심도 두려움도 아닌 '한계 안에서 실험하기'라는 태도가 삶을 만든다고 느낀다. 이것은 어찌 보면, 아주 형식적인 실험이다. 내게 삶이 주어졌으므로, 이 삶을 가지고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면서(이를테면, 게임을 하면 어디까지 사냥 가능한지 몬스터들에게 들이박아보는 것처럼)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의 가능성들을 찾아내는 게임 같은 것이 삶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삶이라는 게임이 주어져 있을 뿐인 것이다. 나는 목숨 하나를 가지고 나에게 가장 알맞는 플레이 방식을 찾아내는 꽤 까다로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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