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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12. 2023

나는 무엇이든 스스로 만드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무엇이든 스스로 만드는 걸 좋아했다. 기억나는 몇 순간이 있는데, 하나는 일종의 포켓몬스터 장난감 151종을 만들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포켓몬스터 장난감이 잘 없기도 했거니와, 있어도 너무 비쌌는데, 나는 포켓몬스터를 너무 좋아해서 꼭 실물로 갖고 놀고 싶었다. 그래서 포켓몬스터를 모두 컬러 인쇄 한 다음, 박스로 형상을 만들어 붙여서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보드게임을 만든 일이었다. 당시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이라는 컴퓨터 게임이 꽤 유행했었는데, 나는 게임 살 돈도 없고 또 어떻게 설치를 해도 컴퓨터로 하기에는 좀 어렵고 답답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해당 게임을 내 입맛에 맞게 보드게임으로 만들어서 사촌형을 만나 게임 룰을 설명해주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다만, 내가 생각보다 룰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서 그것도 진행이 그리 원활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밖에도 나는 무엇이든 내가 내키는대로 직접 만들어서 즐기는 걸 선호했다. 그 동기가 정확히 무엇이었냐고 하면, 세상에는 내게 100% 맞는 놀이가 없었다는 점이 아니었나 싶다. 80%나 90%쯤 마음에 드는 건 있어도, 100%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래서 유치원생 때부터 전지 한 가득 모험 이야기를 그리는 걸 시작으로, 게임과 놀이를 만들고, 장난감을 만들고,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나중에는 소설을 쓰는 일로도 이어졌다. 내가 딱 원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으면 해서였다. 


소설 쓰기의 열정이 꽤 오래 이어진 것도, 세상의 수많은 소설들을 읽어도 100% 내 마음에 드는 소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소설이어도 100%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나의 100%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게 꽤 오랫동안 소설을 썼던 원동력이었다. 그런 마음이 조금 식어갔던 건 소설 자체에 대한 열정이 줄어든 것과 관련 있었다. 나에게는 매시절마다 게임이나 놀이, 소설처럼 가장 '즐거운 것'이 있었는데, 소설의 시절도 어느 순간에는 지나갔다. 


첫 책을 쓴 동기도 꼭 그와 같았다. 당시 유행하던 '청춘 담론'의 책들이 여러 권 있었는데, 어떤 책도 내가 생각하는 청춘과 100% 맞지 않았다. 나는 당시 내가 느꼈던 청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청춘의 해답을 적어나갔다. 그것이 나의 첫 책 <청춘인문학>이 되었다.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은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라든지,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담은 <분노사회> 등이 모두 시중에 있는 책으로는 100% 만족할 수 없었던 내가 100% 나를 만들고 싶었던 그런 열망에서 나왔다. 


요즘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각종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뉴스레터를 운영하기도 하며, 나의 100%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고자 매일 글을 쓰기도 한다. 아이랑도 새로운 놀이, 그림책 등을 계속 만들어간다. 사실, 직장에 다니며 변호사 일을 한다는 건 100% 나의 일은 할 수 없다는 걸 뜻하는데, 그래도 그 가운데 나름 또 나만의 것들을 만들려고 애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나는 내가 다양한 사건을 맡으며 탐구했던 법적 지식들을 잘 정리해서 누구나 그런 지식을 이해하고, 지식을 지닐 수 있고, 그로써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나만이 쓸 수 있는 법률 서적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만간 나올 '저작권법 책'도 내가 생각할 때는 시중에서 가장 쉽게 쓴 책이다. 내가 법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나만의 일은 그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또 내가 만들 수 있는 걸 만들어나갈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 여정을 생각하면, 무엇을 신나게 소비하며 살 것인지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늘 무엇을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만들고 싶은 건 정말 많다. 마치 내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나만의 레고 성과, 내가 그린 그림과, 내가 만든 장난감처럼, 나는 내 삶의 남은 여정도 내가 만들고 싶은 것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나는 그냥 그러려고 태어난, 이를테면, 목수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것 같다. 그냥 그러고 사는 게 좋아서 그러고 사는, 일종의 만들기 취향의 인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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