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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13. 2023

나는 소비로 평가받는 영역을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


나는 인생에 소비로 타인들에게 평가받는 영역을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걸치고 다니는 것 중에 평가에 신경쓰는 건 거의 없다. 내가 입은 양복 브랜드도 남들이 알 수 없고, 시계는 거의 차고 다니지 않으며, 휴대폰도 5년째 쓰고 있다. 안경은 아이가 일년에 한두번씩 부수기 때문에 값싼 플라스틱 안경테를 쓴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니 내 차가 무엇인지도 남들은 모른다. 


대신 나는 스스로를 생산으로 평가받는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누구든 내가 생산한 20여권의 책을 읽고 당장이라도 나를 평가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매일 생산하는 SNS의 글을 읽고 나를 평가하기도 할 것이다. 생산으로 평가받는 건 소비로 평가받는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 소비 대상은 바꾸면 그만이지만, 이미 생산한 것을 되돌리고 부정하기는 더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소비로 평가받는 데 별로 관심이 없고, 생산으로 평가받는 걸 선호한다. 소비로 평가받는 데 길들여지는 것은 일종의 노예가 되는 일이라 느낀다. 당장 나도 어떻게든 값비싼 안경, 시계, 벨트 같은 걸 차고 다니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겠으나 그런 뿌듯함은 되도록 느끼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더 많은 소비, 돈, 기업, 유행의 노예가 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소비사회는 어떤 상품이 '진짜' 가치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가상적인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더 많은 돈을 쓰게 만든다. 가령, 50만원짜리 시계나 500만원짜리 시계는 기능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사실 디자인도 꼭 500만원짜리가 더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냥 그런 '믿음 체계'를 소비, 자본과 결탁하여 만들어놓고 끊임없이 가상의 가치를 끌어올릴 뿐이다. 나는 거기에 걸려드는 건 일종의 개미지옥에 빠지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계가 5000만원이든 5억원이든 새콤달콤 구매하듯 여기는 만수르 같은 사람, 이를테면, 이 믿음 체계의 최상부에 확고히 위치한 사람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그 가상의 믿음 체계에는 빠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20대 언제쯤엔가, 시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첫 시계를 사면서 매우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당최 무슨 시계가 괜찮은 시계로 사람들에게 '믿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기이한 '믿음 체계'에는 지금도 들어가지 않아서 여전히 모른다. 


반면, 내가 비교적 소비에 열심인 영역이 있다면 경험의 영역이다. 나들이, 여행, 운동 같은 것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소비를 하려고 한다. 특히, 올해에는 운동에 비교적 큰 소비를 했는데, 여러모로 건강한 신체와 체력의 중요성을 너무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해진 신체로 더 즐겁게 삶을 살아가고, 아이랑 놀아주고, 많은 곳을 여행하는 데는 관심이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소비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경험을 생산하기 위한 소비 정도라 생각한다. 


다만, 타인들로부터 평가받는 것과 무관하게 좋아하는 다소 오타쿠 같은 소비 영역이 있긴 하다. 그것은 '책'에 대한 소비이다. 나는 매달 십만원치 정도의 책은 사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책들을 어디 전시할 일도 없고, 사실 내가 산 책 가지고 타인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일도 없다. 이 또한 내게는 일종의 경험 소비 영역에 가깝다고 느낀다. 밑줄을 많이 긋지 않은 책은 다시 중고로 팔아 버린다. 


사람들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마련이므로, 나의 방식이 꼭 옳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나는 그것이 내게 좋아서 그렇게 살아간다. 아마도 나는 생산이 이 삶에 나를 새기는 하나의 방식이라 믿는 듯하다. 소비로 얻은 것이 '나'라고는 좀처럼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내가 산 자동차나 시계를 나라고 믿는 신앙은 도무지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나는 내가 경험하여 생산하는 것이 나라고 믿는 신앙 속에 살아간다. 그러니까 단지 나는 소비라는 종교가 아닌, 생산이라는 종교를 믿는 한 여러 종교인들 중 하나의 종교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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