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삶을 노래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물 위에 떨어져 바다로 떠내려가는 수많은 이파리들과 같은 것이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중)
가족들에게 두들겨 맞고 마을의 최고 악동으로 소문난 제제는 어느 날 뽀르뚜가라는 이웃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도 처음에는 한 사건으로 제제를 혼내지만, 제제의 사정을 알게 된 뒤로 누구보다 따뜻한 이웃 어른이 된다. 아버지의 실직과 가난, 가정 폭력 등으로 고통받던 제제는 세상의 유일한 안식처를 얻는다. 어느 날, 뽀르뚜가는 제제를 데리고 한 강으로 나들이를 떠난다.
아마 이 장면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일 듯하다. 제제는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꽃잎을 보면서 “이런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건 가만히 머물러 있는 ‘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꽃이 흩어져 꽃잎들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 자라는 것, 잊히는 것이다.
뽀르뚜가는 세상을 보며 감탄하는 제제에게 말한다. “멋진 꿈만 꾸고 머리의 잡생각들일랑 다 잊어라.”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에 켜켜이 쌓인 온갖 걱정, 근심, 죄책감, 자책감 같은 ‘잡생각들’을 떨쳐내는 곳에 있다. 뽀르뚜가의 차에 타고 달리며 감탄하는 제제의 마음은 비로소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그것은 늘 마음에 쌓인 것들을 내려놓고 마음을 여는 바로 그 순간 다가오는 축복 같은 것이다. 진지냐 할머니 말대로 “기쁨은 마음속에 빛나는 태양”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다가 운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어린아이가 자기 마음을 견디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런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언제나 여기 있는데, 그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건 우리 마음이다. 우리는 바로 그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를테면, 명상, 마음챙김, 기도 같은 것을 통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타인’이라는 열쇠를 통해 마음의 자물쇠를 열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달리 말하면, 인류의 탄생 이래 인간의 마음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타인’이었으며, 인간을 구원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었다. 인간에 받은 상처는 인간이 다시 치유해주고, 그 치유에 힘입어 우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연다.
그렇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진실, 상처도, 기억도, 아픔도 이파리들처럼 흘러간다는 삶의 진리 같은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직감은 바로 그런 흘러감의 찰나 같은 것에서 느낀다. 우리 삶이 잠깐이라는 것, 다 흘러가고 상실한다는 것,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삶을 그토록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언제나 ‘찰나와 흐름’으로 경험된다. 대여섯살 남짓의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도, 그 찰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순간이 있다.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흐름과 이별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친구와의 이별, 라임오렌지나무와의 이별, 달팽이나 장난감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면서, 우린 삶이 아름답다는 것과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배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날 것임을 직감한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슬퍼하고, 아름다움을 가장 잘 아는 순간에 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