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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16. 2023

우리는 정말 기적적으로 육아를 해내고 있는 것 같아

아내랑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정말 기적적으로 육아를 해내고 있는 것 같아."하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하나의 요소만 어긋나도 육아가 불가능할 것 같은, 어떻게 보면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육아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거의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절묘한 조건으로, 매일 임기응변과 같은 상황에서 육아가 이어지고 있다. 

양가의 물질적이거나 실질적인 도움도 거의 없이, 사람 한 명 고용하지 않고 맞벌이 부부인 우리가 육아를 해내는 건 기적이다. 다행히 내가 다소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반면, 아내가 다소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직장이어서 그 교집합의 시간 동안 아이를 유치원에 맡길 수 있다. 또 급할 땐 어떻게든 연차를 쓸 수 있는 직장인 덕분에, 아이가 아프거나 할 땐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 보내기 위해 봉고차를 기다리다 보면, 나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모두 가정주부처럼 보이는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함께 기다린다. 육아휴직을 한 경우도 있긴 할테지만, 당장은 일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아이가 더 어릴 때, 문화센터에 데리고 다닐 때 보면 열에 아홉은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요즘처럼 좋은 시대에 아이 키우려고 누가 직장을 그만둬? 하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는데,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인지를 체감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 등 몇몇 큰 조직들은 직원을 비교적 여유있게 운영하는 경우가 있어서, 육아 휴직이나 휴가 등에 비교적 자유로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인원을 매우 빠듯하게 운영한다. 그러면 육아와 관련되어 일을 쉴 때, 회사 대표 뿐만 아니라 주위 직원들의 눈치도 매우 신경쓰인다. 만약 대기업처럼 거대한 익명 조직이 아닌데도 아무렇지 않게 출산휴가,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등을 허락해주는 기업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기적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경력 단절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시작되는 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기이다. 12시면 끝나는 아이들, 또 처음으로 '돌봄'의 영역에서 '교육'의 영역으로 넘어가며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이런 시기는 흔히 여성들에게 '대학살의 시기'라 불린다. 우수수 직장을 그만두면서 아이의 돌봄에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경력 단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나마 양가 부모 중 한 쪽이 가까이 있거나, 혼신의 쇼 같은 학원 뺑뺑이가 가능한 환경이거나, 믿을 만한 사람을 고용할 정도의 경제력과 행운이 있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맞벌이의 기적'에도 한계가 오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실상 사회 시스템 전반이 '이래도 육아할거야? 진짜 한다고? 좋아, 어디 할 수 있나 보자.'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대신 육아 문제를 개개의 가족에게 모두 전가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등이 노후에도 총동원되어야만 간신히 아이 하나 키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 집값이나 아이 사교육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몫이라고 하니, 사실상 사회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기적인 이유는, 아이가 아프거나, 부모 하나 중 한 명이 아프거나, 양가 부모 중 아픈 어른이 생기기 시작하면, 거의 붕괴 직전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내가 한 달이라도 아프면, 이 집안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는데 '절대로 그런 일은 있어선 안되겠구나.' 생각한다. 열심히 체력 관린, 면역력 관리, 건강 검진 등을 잘 하지 않으면, 그대로 이 구조는 '끝장'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랄 것은 거의 없다. 

어쨌든 우리는 기적에 힘입어 아이 하나 간신히 키우고 있지만, 과연 기적에 의존해서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인지에는 의문이 든다. 전 사회가 돌봄을 지지하고 도와주어도 부족할텐데, 이런 총체적 각자도생에서는 스스로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이 되어 원맨쇼 능력을 기르거나, 기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회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저출생 국가가 되어 소멸로 향해 간다는 게 썩 이상하지 않다. 기적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란, 멸종위기 동물들에게 썩 어울리는 명칭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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