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Aug 09. 2023

수상한 사람과 연애했던 아내

연애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내의 주변 사람들은 나를 다소 수상하거나 불안하게 여겼다. 그럴만도 했던 것이, 번듯한 직장이 있던 것도 아니고, 벌이도 변변찮았으며, 아내랑은 순전히 우연히 만나 나에 대해 '검증'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라는 수상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아내와 사귄다고 하니, 아내의 친구 등 주변인들이 다소 의심스럽게 여겼을 법도 했다. 


우리는 30년간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 삶을 살았고, 공통된 지인도 전혀 없었다. 두세다리쯤 건너면 다 아는 좁은 한국 사회라곤 하지만, 서너다리 건너도 아내와 나 사이에는 만날 길이 없었다. 그만큼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가 별똥별 줍듯 서로를 만나기 시작했으니, 의심과 불안, 근심과 걱정이 있을 법도 했다. 우리의 연애 초기는 서로에 대한 그런 불안을 극복해나갔던 여정이기도 했다. 


특히, 나는 당시 다니던 대학원도 그만두고, 작가로서의 길에도 많은 고민을 하던 때였고, 스무살에나 할 법한 취업 준비와 여러 방황을 거치던 시기였으니, 나로서는 연인이 나를 믿지 못하고 '버리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종의 자기방어랄지, 나 같은 건 그다지 선택받지 못해도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정말 좋아. 그러니까 내가 선택한 당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걸 알아." 


어찌 보면,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믿어준다는 것에는 구원 같은 느낌이 있다. 나를 너무나 잘 아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기적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의 그런 '믿음'에 부응하고자 나를 탈피하고 싶어진다. 진짜로 그 믿음에 맞는 어떤 존재로 탈바꿈하고 싶어진다. 과거의 찌질했거나 부족했거나 한심했던 나를 버리고, 그 사람이 보는 바로 그런 나 자신이 되고 싶다. 그 사람이 내게서 발견한 그 무언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오늘 아내는 내게 <my way>라는 노래를 유튜브로 틀어주면서, 이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운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 생각을 하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한 평생을 살아낸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가 어쩐지 내 이야기 같았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 가사가 자신이 아닌 내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며 울어줄 사람이 아내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아내는 여행에서 내가 아이와 종일 엎치락뒤치락하며 놀고, 포켓몬이 어쩌니 저쩌니 떠드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친구 없는 여보한테 친구를 만들어준거야." 하고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나는 늘 친구가 없는 게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좋아하는 사람, 서로에 대한 호의를 가진 사람,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지인 등이 있지만, 가까이에서 삶을 오랫동안 깊이 나누는 '친구'라는 건 좀처럼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여기 친구가 있었다. 매일 같이 놀고, 뒹굴고, 티격태격하고, 그렇지만 결코 떠나지 않는, 서로의 삶을 뒤섞어버린, 사랑과 우정의 연대가 여기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내는 나에게 모든 걸 다 주었구나, 싶었다. 나의 글쓰기에서 아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내가 지금 이루고 있는 가정은 아내가 준 것이다. 아내는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역시 또 아이라는 친구를 만들어주었다. 아내는 내가 나의 방식대로 나의 길을 살아올 수 있게 믿어 주었다. 마치 오랫동안 나의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어떤 믿음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는 그렇게 애써왔고, 그런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고맙다. 그리고 이건 역시 기적이나 구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정말 기적적으로 육아를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