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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20. 2023

유튜브와 스케치코미디, 하이퍼리얼리즘의 시대

코미디의 몰락과 부활그리고 스케치코미디     


  2020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KBS <개그콘서트>가 종영하면서, 한국의 코미디가 ‘끝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대중들은 공채 개그맨 사이의 엄격한 수직관계나 공중파 TV의 억압적이고 제한적인 시각, 우리 나라 방송계의 보수적인 문화 등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며 이를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이 무색하게도 확장하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YOUTUBE 등 동영상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각종 코미디 채널들이었다.

  언젠가부터 코미디에 관심 있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유튜브 그거 봤냐”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가령, <낄낄상회>의 목사님과 스님 몰래카메라라든지, <피식대학>의 중년 산악회 연기라든지, <숏박스>의 장수커플 대화 같은 것들이다. 처음에는 유튜브가 한둘도 아니고 어떻게 다 알겠느냐고 말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확고히 대세로 자리매김한 채널들이 생겨났다. 모르면 조금 머쓱할 정도로 ‘핫한 채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채널들 중 상당수는 기존 지상파 공채 개그맨 등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지상파 등 기존 TV에서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잃자 독립을 하면서 채널들을 만들기도 했다. 제약없이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지자, 트렌드를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각자의 창의성을 발휘한 콘텐츠들이 폭발하고 있는 셈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우리 나라의 코미디 몰락이 말해질 때, 이들은 새로운 시장과 매체를 열어 젖혔다.

  특히, 최근 유행하는 코미디는 일종의 ‘스케치코미디’라고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토크쇼 형식의 코미디나 이야기 형식의 콩트와도 다른 면이 있다. 그보다는 특정 상황을 리얼하게 장면 찍듯이 ‘스케치’하거나, 특정 성격의 인물들을 짧게 보여주는 식으로 ‘스케치’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형식이라 보기 어렵고, 대놓고 웃기기 위한 사연 위주 토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지극히 리얼하고 일상적인 한 장면을 닮았을 뿐인데도, 그 묘한 재현이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보면, 스케치코미디는 우리 시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는 OTT(Over The Top) 업체인 쿠팡플레이에서도 <SNL 코리아>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러한 유행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상들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케치코미디가 일종의 대세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스케치코미디는 ‘하이퍼리얼리즘’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스케치코미디와 하이퍼리얼리즘     


  <웃찾사>나 <개그콘서트> 등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를 잃어갈 때, <무한도전>, <1박2일>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리얼 버라이티 예능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후 <나혼자산다>, <동상이몽> 등의 관찰예능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흥행의 공통점은 모두 ‘리얼’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즉, 기존 예능이나 개그 프로그램이 다소 작위적인 상황에서의 연출을 추구했다면, 대세는 얼마나 더 ‘리얼함’을 보여줄 것인가로 흘러갔다.

  이러한 ‘리얼함’의 유행은 최근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까지 불리며 더 적극적으로 추구되고 있다. 가령,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된 <피식대학>의 ‘한사랑산악회’를 보면, 특별히 작위적인 연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중년 남성의 산악회를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것처럼 ‘리얼’할 뿐이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활력적이며, 누군가는 장광설을 늘어놓고, 누군가는 고상한 척 지식 자랑을 하는 등 저마다 개성 있는 중년 등산객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묘하게도 그 리얼함 자체가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수백만명이 시청한 SNL의 <인턴기자>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후반부에 울음을 터뜨리는 등 지나친 연출이 있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중반부까지의 핵심은 그저 평범한 요즘 청년 인턴 기자의 모습을 ‘재현’한 것 뿐이었다. 적당히 ‘인턴이라면 이럴 것이다’ 정도의 재현이 아니라, 정말 바로 지금 어느 청년 인턴이 그럴 것 같은 모습을 그대로 앵글에 담은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한 것이 포인트였다. 약간 긴장한 모습, 그러한 긴장감을 애써 감추기 위해 자신있어 하는듯한 표정, 다소 방어적인 자세와 불안한 눈빛 등이 너무도 리얼하게 담긴 것이다.

  이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가 왜 그로톡 유행하는지에 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인생 자체가 ‘원래’ 희극적이라는 전통적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있어 왔던 수많은 희극들은 단지 우리 삶과 ‘거리’를 조절하며 삶을 비추었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저 우리는 웃긴 삶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이별하여 눈물 콧물 흘리던 일도 지나고 나면 우습기도 하고, 청년 시절에는 세상 진지하게 토론했던 술자리에서의 이야기들도 후에 보면 웃기기도 하다. 하이퍼리얼리즘은 그런 우리 삶의 희극적 성격을 더 리얼하게 재현했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시대의 주요한 문화 또는 정서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 시대에는 전방위적으로 ‘구경꾼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각종 SNS에는 수많은 사람들이나 인플루언서의 일상이 속속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러한 전시는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전시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일상을 ‘구경’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나아가 과거에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게임 유튜버 등이 게임하는 걸 그냥 ‘구경’만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정치적인 논쟁도 직접 대자보를 붙이거나 참여하기 보다는, 정치 유튜버나 논객 등이 서로 싸우는 걸 부추기고 구경하는 현상이 폭넓게 퍼지고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의 여러 주인공들 또한 같은 인생을 다시 사는 ‘회귀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주된 특성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알고 전지적으로 구경하는 자세를 취하곤 한다는 점이다. 예능은 대부분 ‘관찰예능’적인 성격을 띈 지 오래다.

  이처럼 ‘구경’이란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화영역 및 콘텐츠에서 매우 뚜렷한 현상이 되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또한 우리 삶을 최대한 리얼하게 담으면서, 우리가 우리의 삶, 그리고 이웃의 삶 자체를 보다 구경하는 자의 관점에 설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하이퍼리얼리즘에 담긴 우리의 삶, 코미디 속에 스케치된 우리의 일상을 구경하며 웃는다. 우리는 구경한다. 고로 존재하고, 웃는다.      



스케치코미디의 명과 암


  YOUTUBE 등 새로운 매체를 중심으로, 이 시대의 하이퍼리얼리즘과 구경꾼 문화를 반영하며 퍼져나가는 스케치코미디의 현재는 밝아 보인다. 실제로 기존의 지상파 공채 개그맨만이 아닌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기도 하고, 대중과 더욱 가깝게 소통하며 역동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콘텐츠들이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우리의 추억이나 과거 일상, 다양한 삶들의 모습이 재현되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이퍼리얼리즘을 위주로 한 우리 시대 스케치코미디가 갖고 있는 위험도 있어 보인다. 특히, 구경에는 언제나 품평이나 조롱, 혐오가 따라붙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무언가를 웃기게 여기는 일은 때로 비웃음이나 조롱이 된다. 가령, 아무리 리얼하게 현실을 재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재현 자체가 탈북민이나 청년, 노인, 장애인 등을 조롱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SNL코리아 <인턴기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숙한 청년이나 여성에 대한 조롱이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현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연출하는 일은 때때로 현실에 존재하는 각종 혐오와 차별도 재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특히나 코미디는 그것을 사뭇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재현하기 보다는 언제나 ‘웃음’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그 웃음이 ‘비웃음’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늘 품고 있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구경’이 결코 중립적인 구경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악플, 마녀사냥, 조롱, 혐오, 집단 린치 등을 양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구경꾼 문화를 중심에 둔 스케치코미디 또한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스케치코미디를 만들고 연출하는 생산자나 이를 시청하며 댓글을 달고 퍼뜨리는 수용자 모두 조롱과 혐오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냥 웃고 떠들 때, 그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웃음은 인간사에서 필수적인 기쁨과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사회를 스케치하며 담아내는 코미디     


  스케치코미디는 우리의 삶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 속에 담긴 ‘사회’를 재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속에는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권력관계, 남녀간에 일어날 수 있는 성차별적 요소, 기성세대와 청년간의 갈등, 정치인이나 권력가의 탐욕, 돈만 밝히는 사회의 단면 등이 담기게 된다. 그렇게 보면, 스케치코미디는 우리 사회의 여러 요소들을 재현하는 비평적이거나 비판적인 모습을 띄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역할은 전통적으로 희극이 하던 ‘풍자’ 역할과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일반적인 풍자나 해학에서는 고의적으로 특정 현상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의 스케치코미디는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과거 ‘리얼리즘 문학’과 더 유사한 면을 드러내는 것처럼도 보인다. 달리 말하면, 한때 문학이 자연스럽게 하던 역할을 최근의 스케치코미디가 대신하는 측면도 있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현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나 인간사의 모습을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스케치코미디가 유효할 수 있다. 특히, 인류학이나 사회학, 또는 문화비평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각종 스케치코미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수는 수백만명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 시대 가장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단지 웃음을 바라는 사람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떠한지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스케치코미디를 권한다. 그 속에는 살아 숨 쉬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스케치 되어 있다. 이 형식은 현재 가장 유효한 문화 콘텐츠 형식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 이 글은 릿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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