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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23. 2023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이자 전선, 학교


누구도 서로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 시대, 학교는 사실상 마지막으로 '타인'인 아이들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공간이 되었다. 학교마저 없다면, 이 사회는 거의 반드시 붕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맞벌이 부부들은 가족도, 친척도, 이웃에도 의지할 수 없는 시대에, 최후로 학교만을 믿은 채 일터로 나간다. 학교는 교육을 넘어 보육 공간이 되었고, 우리 사회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최후의 전선 같은 것이 되었다. 


아이들은 가정이나 성장과정에서의 온갖 심리적 문제를 안고 학교에 모인다. 과거에는 집단적으로 훈육되며 동일한 규율에 복종하는 군대식 현장이 학교였다면, 이제 학교는 시대 변화에 따라 개개인들의 심리적 상처와 진로 고민, 인생에서의 성장 등 일대일 종합 케어 서비스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담임 선생'이라는 존재 하나인데, 사실상 우리 사회의 공백을 교사 한 명한테 다 해결하라고 던져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부는 거의 끊임없이 교사들에게 새로운 규율만을 강조하는 공문을 보낼 뿐, 실질적으로 교사들이 대하고 있는 현장을 확실하게 지원해주는 보급 부대로서의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대신 교사들에게 점점 더 많은 책임만 떠안기면서 수많은 행정 업무까지 처리하게 하고 있어, 우리 나라 교사들의 행정 업무 시간은 OECD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교사가 그 모든 걸 감당하고 있다가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사실상 나 몰라라 하고 교사가 스스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처해야 한다. 


아이들이 커나갈수록 학교의 목적은 더욱 모호해지고 복합적이 된다. 이때부터는 아이들의 입시와 진학, 진로 문제가 본격화되고, 교사들은 입시학원의 강사 역할로도 내몰린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생활기록부를 챙기고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진로를 잡아주어야 하고, 수능 족집게 강사까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비난까지 들어야하는 입장이 되는데, 이쯤되면 도대체 학교란, 교육이란, 교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교사는 일종의 팔방미인, 아니 십팔방미인쯤 되는 존재로서의 요구를 부여받고 있다. 교사는 심리 케어에 있어서는 오은영 박사 수준이 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문제라도 일으키면 부모 대신 경찰서에 가야 하고, 각종 갈등과 충돌에 대한 법적인 지식을 겸비해야 하며, 일타 강사 수준의 족집게 강의를 해야하고, 저마다 학습 수준이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케어하거나 보살필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일일이 챙기며 그 아이들의 진학과 미래를 책임져야 하고, 아이들의 교우 관계, 가정에서의 문제, 심지어 학부모들의 정신까지 케어하며 새벽까지 문자에 시달려야 한다. 


적지 않은 학교장은 그 와중에 학교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며 교사들을 압박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은 여론에만 신경쓰며 문제를 덮거나 방치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다. 문제는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괴물이 된 게 아니라, 교사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를 지원할 시스템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보통 학교마다 진로교사와 상담교사가 1명 정도씩 배치되는 게 거의 전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본다면, 한 학급당 심리 상담사가 1명씩 있어도 부족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이나 강력범죄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전담 직원이나 스쿨폴리스도 없다. 학폭위는 일반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업무 중 하나로 담당한다. 사실상 공동체가 거의 붕괴된 사회에 마지막 남은 공동체로서의 최후 기지라고 하기에는, 매우 빈약한 병력들로 취약한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교사 명예퇴직은 16년 만에 7.5배로 늘었다. 교원의 87%는 지난 1년간 사직을 고민했다. 최근 5년새에 관련 문제로 정신과 치료 및 상담을 받은 교원 수는 30%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태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그나마 태어나는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 무작정 밀어넣어지고, 교사들은 이 나라 최후의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 


각자도생이 완전히 자리잡은 이런 사회에서, 누군들 타인의 인생을 그다지 책임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돈을 준다고 해도 돈 받은 만큼만 일하고 싶은 마음은 다들 같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사라는 이유 하나로, 사명감과 중압감을 짊어지고 사회가 밀어낸 온갖 의무들을 짊어진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학교는 이제 옛날과 같은 학교가 아니다. 이런 수많은 기능들을 분산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학교에는 수많은 손길이 더욱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은 인력과 시스템과 도움이 정확하게 필요한 우리 사회 '최후의 벙커' 같은 곳이 되었다. 학교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다. 여기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하는 최후의 전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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