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입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갔는데, 한 중년 남자가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서 한참동안 창구 앞에 서있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이 경우는 본인이 직접 와야 해서 업무를 처리해드릴 수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 없었다. 그는 온갖 상욕을 퍼부우면서 몇 십분째 그러고 있었고, 뒤에는 기다리는 사람만 스무 명 정도는 되었다.
직원들이 여럿 응대하느라 주민센터 업무는 마비될 지경이었고, 나는 보다 못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이 올 때쯤에 그 사람은 돌아가고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범죄행위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는 왜 서비스 제공자에게 행하는 이런 범죄행위들이 용인되는 사회가 되었을까?
일단, 공무원을 이렇게까지 인간 이하 취급해도 되는 사회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의 태도와도 관련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령, 대부분 구청장이 원하는 구호는 무엇일까? "여러분, 우리 구의 공무원들은 구민들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성심성의껏 해드리는 노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일까, "여러분, 공무원도 인간입니다. 함부로 대하면 고소 고발 절차에 들어갈 것이니,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일까? 아마 전자일 것이다.
상당수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자기를 지지해줄 사람들이고, 자기가 얻을 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선 현장 공무원들은 자기 표를 위한 소모품 취급하고, 자신을 위해 얼마든지 활용해도 좋은 장기말이 된다. 현장 공무원들이 죽어나가도 걱정되는 것은 다른 공무원들이 아니라, 혹시라도 떨어져나갈지 모르는 표, 자기 지지율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인권 사각지대에 내몰려버리는 셈이 된다.
개인적으로 그런 악성 민원인들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보게 되는 것을 보면 아주 다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문제는 소수일지라도 그러고도 '괜찮은' 사회인 게 문제이고, 그래서 소수가 다수에게 피해주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악의적인 고소로 억울하게 수사받는 사람들이 즐비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목소리 크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디로, 정의가 바로서지 못한 상황이다.
사실, 지금도 그 주민센터에서 욕설과 협박을 당한 직원은 그 사람을 고소할 수 있다. CCTV도 있을 것이고, 목격자도 한 다발은 있었다. 구청이나 주민센터 차원에서 민원 응대하는 공무원들을 보호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즉시 신고하고 사후 고소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모두 따르게 하면 된다. 아니면 지자체 조례를 만들거나 행정안전부 등에서 행정규칙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다들 그냥 '쉬쉬'하고 넘어갈 때마다, 현장을 책임지는 이들의 인권은 등한시되고, 사회의 근간은 점점 더 흔들리게 된다.
교사든, 민원 대응인이든, 도서관 사서든, 사회 복지사든, 재난 현장의 공무원이든 공공을 책임지는 최전선의 이들이 범죄를 당하며 묵묵히 견디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는 못할망정 내가 낸 세금으로 임금주는 노예라는 기묘하고 악마 같은 궤변이 우리 사회를 곰팡이처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진짜로 필요한 건 나의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앞에 선 모든 이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줄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