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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23. 2023

안 따라가면 나만 손해볼 것 같은 사회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은 '안 따라가면 나만 손해볼 것 같다.'라는 문장 하나로 정리되는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거 나만 안하면 손해볼 것 같은 이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게 정신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나머지, 이러한 관념이 우리 삶과 사회, 문화까지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이 관념은 거의 죽음과 착종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매우 강력한 강박으로 작동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남들이 다 하는 거 안하면 나만 손해볼 것 같다는 정도를 넘어서, 못하면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소하게는 블루보틀이나 런던베이글이 개점하는 순간, 온 세상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가서 5-6시간씩 줄을 서서 커피 한 잔 빵 하나 사 먹는 일 같은 것이 있다. 이 때 사람들이 느낀 건, 어떻게 보면 일종의 공포라고도 할 법하다. 나 빼고 다 몰려가는데, 나만 남아 있으면 일종의 버려진 느낌, 도태된 느낌, 뒤처진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처럼 온 세상의 핫하고 힙한 장소들은 물론이고, 각종 콘텐츠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영상을 보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라면서 불안을 조장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영상을 보기만 해도,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 이 영상을 못 봐서, 당신은 경제적 자유의 기회를 놓쳤다. 이 영상을 못 본 당신만 어리석게 뒤처졌다. 이런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들 상당수가 성공하고, 거의 보편화되기까지 했다.


끝을 모르는 부동산 폭등도 비슷하다.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평생 집 없이 살아야 한다는 공포, 다름 아닌 이 도태됨에 대한 불안이 집값을 계속 끌어올린다. 여기에는 아주 분명한 타당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를테면, 오르는 건 주요 지역의 대단지 아파트 같은 것인데, 정작 바로 옆의 빌라는 별로 오르지 않는 식이다. 만약 진짜 집 없는 것이 합리적인 문제라 느낀다면, 적절한 곳의 나쁘지 않은 주거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비이성적인 공포다.


이 공포는 점점 더 기묘한 방식으로 확산된다. 애초에 전쟁 당시에는 '피난 정서'로 발현되었을 이 정서는, 이제 지방 소멸과 저출생으로 인한 국가 붕괴를 앞에 두고 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 국민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노후까지 믿을 건 개인 자산 밖에 없다는 각자도생으로 기운다.


어쩌면 이렇게 죽음의 공포를 등 뒤에 지고 몰려가는 건 우리 역사에 각인된 정서일 것이다. 전쟁에서의 피난 뿐만 아니라,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누군가는 자리에 앉아 벼락부자가 되는 걸 너무도 많이 보고, 대세에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는 역사들이 축적되면서, 서둘러 최대한 빠르게 남들을 따라가고자 발버둥치는 게 이윽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미탑을 쌓는 흰개미들처럼, 소용돌이처럼, 우리는 대세로, 중앙으로, 미친듯이 빨려들고 몰려든다.


사회마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나라마다 살아남는 방식은 다르므로,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역시 그런 방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혼자 고고하게 산 속에 살다가는 언젠가 가만히 있었다는 죄로 국가에서 내 집을 철거하고 길바닥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 대세를 쫓아 정신없이 살아가는 삶이 과연 진짜 나의 삶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인지, 내가 좋아하는 나의 삶으로 가는 여정이 맞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피난가지 않으면 죽겠지만, 피난에만 온 열성을 다하다 보면,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잃어버린 채 덩그라니 무인도에 남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피난가다가 인생과 세월은 모두 지나가버린 뒤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시점에는, 이 죽음도, 공포도, 피난도 마주해야 한다. 어떤 순간들에는, 멈춰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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