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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2. 2023

마약의 문제는 현실감의 문제다

최근의 마약 문제는 현실감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마약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만약 사범이 매년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는 작년 상반기 대비 거의 50%가 늘었다. 대개의 진단은 유통이나 접근이 쉬워진 측면을 꼽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마약 문제의 증가가 우리 사회 전반적인 흐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약의 문제는 현실감의 문제다. 마약이 제공하는 극단적인 현실감,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바로 그 지점이 마약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 마약을 갈망하는 시대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현실감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시대가 기묘한 현실감 상실, 현실감 결핍을 앓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현실감이 사라졌다. 이것은 최근의 묻지마 살인에서도 발견된다. 근래 논란이 되었던 몇몇 살인자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무차별 살인 행위를 자행할 때, 마치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길거리의 타인들이 현실감 있는 인간이 아니라, 마치 게임 속의 NPC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칼을 휘두르며 살인 행위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현실감의 문제는 거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가령, 최근 살만한 주거지는 10억 정도는 줘야 얻을 수 있다는 상식이 거의 팽배해 있다. 심지어 10억 정도면 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10억이란 과연 현실감 있는 숫자라 볼 수 있을까? 연봉 5000만 원 받는 직장인이 매일 아메리카노 마시는 돈 아끼고, 배달 음식 아끼고, 간신히 한달에 200만원씩 모으더라도, 거의 평생을 모아야 하는 돈이다.


코인이나 주식 광풍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차트에서 오르내리는 선들이나 파란색 화살표나 빨간색 화살표를 보며, 절망과 희망을 넘나든다. 그런데 사실상 손실율과 수익율에 대해 제대로 된 '현실감 있는 판단'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가령, 원금에서 30%를 손해본다면, 원금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43%의 수익률을 내야한다. 원금을 반쯤 잃었다면 100%의 수익률을 내야한다. 이런 건 평생 주식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장담할 수 없는 수익률이다.


마약은 이처럼 현실감에 총체적으로 상실되어가는 사회의 마음을 파고든다. SNS에서 극단적으로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를 소비하고, 고가의 명품이나 서비스를 아무렇지 않게 할부로 긁었따가 빚에 시달리며, 10억이면 싼 집이라고 느끼면서, 우리 삶에는 어떤 구멍이 뚫려버린 것이다. 단단하게 만들어가야 할 현실은 없고, 어딘지 붕 떠버린 삶, 시야, 이미지 속에서 마치 자력처럼 마약에, 마약과 흡사한 모든 현실감 중독에 이끌린다.


그것은 때론 자극적인 콘텐츠이고, 때론 빚을 내서 하는 투자고, 때론 도박이나 마약 중독이다. 마약을 한 사람들은 그 너무나도 생생한 현실감을 잊을 수가 없어서 결국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현실을 더 이상 현실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 사회는 현실을 상실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 있어야 할 내 곁의 사람들, 서로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연대들, 나의 손 끝이 닿는 나의 일과 구체적인 마음의 관계들, 그밖에 내 삶을 지켜줘야 할 모든 것들이 상실되어 가는 자리에, 우리 시대 사람들은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현실감을 줄 것들을 찾아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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