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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29. 2023

허영이 아닌 정확한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


나는 수습시절을 포함한 첫 변호사 생활을 법무부에서 했다. 다시 공직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에 정책 결정 등에 관여해보고 입법 과정 등을 경험해본 건 무척 잘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 당시에는 계속 공직 생활을 하는 것에 모종의 불안이랄 게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변호사’로서 온전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소송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법리는 알아도 무언가 스스로 불안한 게 계속 있었다. 법은 알아도 실무적인 절차를 모르니, 주위 사람들한테 법적 조언을 해줄 때도 확고한 자신이 없었다. 가령, 대여금 반환을 받으려면 어떤 요건사실로 소장을 써야하는지는 알지만, 정작 그 소장을 가지고 법원에 제출하여 최종적인 집행까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명예훼손을 당하면 어떤 구성요건으로 고소장 써야할지는 알아도, 직접 고소를 진행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불안이 스스로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변호사가 된 이상, 타인을 위해 소송을 하고 고소를 하거나 변호를 하는 게 ‘무엇인지’는 경험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사실  한 금융권 회사의 사내변호사까지 합격해놓고도, 로펌으로 가길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건 스스로의 경험과 능력을 통해 얻는 ‘자신감’이었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나앉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원했다. 가령, 누군가 고소나 소송을 당했다며 도와달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척척 나서서 해줄 수 있는 ‘앎’을 가진 사람이 되길 원했다.


그렇게 어언 3년차 변호사가 되었다. 이제는 누가 법적인 조언을 구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세스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며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또 실질적인 도움도 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는 걸 느끼곤 한다. 물론, 배움에는 끝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점점 더 ‘독립적인 힘’을 길러간다는 것 만큼은 확실히 느끼게 된다. 이제는 길바닥에 나앉아도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타인의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전문지식으로 가지는 한 1인분 직업인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이와 비슷하게 기억나는 일은, 과거에 처음으로 8주짜리 글쓰기 수업을 마치면서 ‘해냈다.’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다. 내가 책 몇 권은 쓰긴 했지만, 과연 남들을 가르칠 정도가 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역시 해야하는 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일단 뛰어 들어 최선을 다해 그 경험을 해내고 나면, 그것 만큼 인생에서 잘했다고 느끼는 일이 별로 없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시작에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 시작을 경험하고 나면 그것은 비로소 ‘나의 일’이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나의 힘이 되지 못한 막연한 불안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극복 대상’이라 느낀다. 나는 계속 이런 종류의 두려움들을 극복하는 쪽으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곤 한다. 아직 내게는 넘어야 할 두려움들이 더 있다. 그 두려움들은 경험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아직 오지 않은 앎이고, 능력이고, 힘이다. 나는 그것들을 넘으며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더 믿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허영이 아닌 정확한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으로 계속 더 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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