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충분해, 내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라는 감각은 삶에서 참 소중하고 드물게 주어지는 것 같다. 인생의 어느 시점을 넘어가게 되면, 지금 사랑하니까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라는 건 점점 불가능해진다. 오히려 사랑 따위 밥 먹여주나,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어, 사랑은 언제나 여타 조건들의 부수적인 서비스나 효과 같은 것에 불과해, 라는 게 흔히 어른들이 갖게 되는 일반적 정서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절에는, 지금 마음 안에 넘쳐나는 사랑이 너무나 확실해서,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사랑만이 확실하게 느껴져서,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연애 결혼이 꽤나 의미있다고 믿는 편인데, 서로의 조건을 하나하나 일일이 따지기 전에, 비교적 순수하게 사랑하던 시절이라는 걸 어느 정도 가진 기억이 둘 사이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 완전하게 순수한 사랑 같은 건 없고, 결국 연애나 사랑이라는 것도 다양한 시대적 조건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래서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으니까, 당장 내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지금 이 순간, 이 밤, 이 우주 속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보다 확실한 건 없어, 라고 느꼈던 그 어느 시절의 이야기가 결국 평생을 지탱하는 작은 버팀목이 되는 때도 있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종종 느낀 때가 있었다. 육아에 시간을 쓸 때, 다른 중요한 일들 대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선택한 순간들에, 나는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이 순간 내가 아이를 깔깔 웃게 해주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가고, 아이와 물놀이를 하고 있어서, 다른 중요한 일을 못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평생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믿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이 순간 내가 이 아이를 참으로 사랑하고 있고, 아이는 행복해서 웃고 있으니까,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 해를 돌아보면, 그런 순간들 보다 소중한 순간은 찾기 어렵다.
세상에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대략, 그런 '다른 중요한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다른 중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늘 자신이 사랑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돈 이야기나 일 이야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내 입장에서는, 그 중에서 더 삶의 소중한 부분을 잃지 않은 사람, 그래서 아마도 더 행복에 가까이 있는 사람, 그렇기에 더 닮고 싶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저마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겠으나, 그저, 세상에는 왠지 닮고 싶거나 부러운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 그런 사람들은 어느 소중한 시절의 마음 같은 것을 잃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인생 살아간다는 게, 결국 다 비슷하기 마련이고, 나중에 다른 것은 어느 동네의 몇 평 아파트에 사느냐, 어떤 명망있는 직업을 가졌느냐, 같은 차이 밖에 남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확실히 그런 것들은 눈에 잘 띄고 비교하기도 좋고 어떤 삶이 더 우월하고 열등한지 손쉽게 계산하기 좋은 지표들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 조금 다른, 삶의 본질적인 차이 같은 것들도 있기 마련이라고 느낀다. 그 차이는 그렇게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이마에 써붙이거나, 전광판에 매달아 광고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일지라도, 삶에는 어떤 질적인 차이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때로는 확신한다. 누군가는 확실히 더 좋은 삶을 사는데, 실제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